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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계에도 봄은 다시 오는가. (完)

3. 레비아탄 데카라비아의 경우.

 

 현재 히어로들을 통솔하는 대표는 레비아탄 데카라비아였다. 페르네 에트르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지만, 바닐레아 부부는 그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번도 히어로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히어로들을 이끌어 이 세계의 안녕을 유지한 사람이라고 했다. 코레 바닐레아는 후세대 사람이고, 레비아탄의 전성기, 현역기를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이라고 아닌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가 와닿는 건 아니었다. 속 알멩이가 페르네 에트르라면 더더욱 그랬다.

 

 코레 바닐레아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으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오랜만에 가진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였는데, 부모라는 작자는 시작부터 정치이야기, 일 이야기, 이데아의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어 딸의 이야기는 들어주지도 않았다. 이런 세월이 25년이니, 코레 바닐레아는 어느 순간부터 포기한 채 목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넣을 뿐이었다.

 

 그런 바닐레아 부부도 딸에게 관심을 갖는 일이 존재했다. “코레?” 코레 바닐레아가 고개를 들고 예쁘게 웃어보였다. “, 어머니.” 이야기를 듣자 하니 후원금과 관련되어 히어로 대표와 만나야 하는데, 네 이름으로 넣었으니 네가 만나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황당하다며 코웃음을 치려던 것을 간신히 참고, 식기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보고는 최근에 받았어요. 제가 갈 이유는 없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것은 비단 속 알멩이가 페르네 에트르였기 때문만은 아니라, 코레 바닐레아가 선천적인 이능력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들키는 순간 약한 몸이고, 바닐레아 가문이고를 신경쓰지 않고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괜찮군.’이라는 평가를 남기며 전선에 배치할 지도 모를 일이다. 듣자하니 본인은 후방으로 빠졌다면서, 인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채용해 굴리는가 보다. 바닐레아 부부는 서로를 한 번 바라봤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지난번의 만남 이후로 데카라비아 씨가 널 보고 싶다고 하잖니.”

 

 

 나는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보자고? 나랑 만나자고? ? 바빠 죽을 그 사람이 나를 왜? 나는 애써 티내지 않으며 식기를 다시 잡아들었다. 애석하게도 히어로의 권위가 정부의 보호 아래 하늘을 찌르는 지금. 바닐레아 부부도 아니고, 그 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거절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야 됐다. 나는 고기 한 점을 입에 밀어 넣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히어로 기관에서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귀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다시? 니샤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레비아탄 데카라비아, 역시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저주해버리겠노라 마음속에서 이를 벅벅 갈고, 나는 이번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안내원의 -히어로인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모르는 신입이었다.- 안내를 받아, 대표실로 이동했다.

 

 레비아탄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전생까지 합치면, 세 번째 정도. 페르네 에트르와는 적으로 만났지만, 코레 바닐레아는 그냥 대표바닐레아 가문의 딸.’ 정도로 만났던 것 같았다. 만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후원금을 쥐고 있는 철부지 어린아이가 만나고 싶노라 떼를 쓰니, 아무래도 윗선의 눈치를 봐야 했던 레비아탄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나를 만나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찾아본 것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가 레비아탄 데카라비아가 맞는지, 그가 살아있는지, 그리고 그는 변하지 않았는지 따위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그가 내어준 차에 입도 대지 않고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레비아탄 데카라비아가 이야기했다.

 

 

"어딘가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습니까.“

 

 

 나는 그가 존칭을 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권력이란 좋은 거고, 돈이란 건 더 좋은 거구나. 내심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행위조차 하지 않고 그를 응시했고, 그렇게 30분이란 시간이 지나자 감사했습니다.’라며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레비아탄 입장에서 생각하건데, 그보다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였던 하루는 드물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 번째 만남이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경우, 니샤에게 이야기한 페르네 에트르가 그의 귀로 꽂혀들어갔을 수 있겠다. 미쳤느냐고, 그 이름을 어디서 입에 담는 것이냐 단단히 협박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차악의 경우라면, 역시 이능력을 들키는 걸까. 환각은 현재까지 내 눈에만 보였다. 망상증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러니 레비아탄 데카라비아가 눈치 챌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정보망은 무시할 게 못됐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대표실 앞에 서서, 히어로가 그 문을 두드리고 열 것을 허락받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손이 차갑게 식었다. 최악과 차악을 생각하면서도, 그 날. 그들의 손에 죽어버린 기억이 상기된다는 것은. 피가 푸르게 변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기억이었다.

 

 잠깐의 기다림이 지나고, 대표실의 문이 열리자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기다렸다는 듯 김이 나는 찻잔 두 개가 놓인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사람 좋게 웃어보였다. 곱상하게, 예쁘게, 최대한 청순가련하고 심약해보이게. 그가 함부로 건들였다간 어머나! 하고 기절할 수 있어 보이게.

 

 

 “찾으셨다고 들었어요, 데카라비아 씨.”

 

 

 애석하게도 레비아탄에겐 이런 웃음이 먹히지 않나 보다. 그는 눈썹 한 번 까딱이지 않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코레 씨.”

 

 

 바닐레아 부부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나는 바닐레아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럴싸한 직업도 업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레비아탄은 노골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돌할 적으로 눈과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그의 안에서 나는 싸가지 없음.’이나 당돌함.’등의 키워드로 적혀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본론을 꺼내지 않았고, 우리는 우리의 두 번째 만남처럼 아주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을 뿐이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침묵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입을 연 것은 그였다. “최근 후원금이 늘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감사 인사라도 하려는 걸까? 그런거면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세계의 나는 바벨탑의 피해자가 아니었다. 부모 없는 고아도 아니었고, 범죄자도 아니었다. 페르네 에트르는 자신만 행복하면 그만인지라, 에트르를 찾는 것, 과거의 히어로들을 다시 만나는 것과 별개로. 자신의 몸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지금 이 세계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본인이 쳐부수고자 했던 이데아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후원금을 늘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감사 인사를 기다렸다. 웃으면서 괜찮다고 해야지, 라고 생각했으나.

 

 

 “과합니다.”

 

 

 라는 말로 일축했다. 뜻은 분명했다. 거절이었다.

 

 이성적으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후원금이 늘어나면 그 사람의 지분이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의 지분이 늘어날수록 히어로 기관에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 나는 히어로 기관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고.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가 말을 이었다. 좋게 말해서 여태까지 후원해주신 걸로 충분하니,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따위지. 속내를 파헤치면 히어로 기관에 영향력을 끼칠 생각 하지 말라는 엄포와 비슷했다.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놨다. 이런 레비아탄은 처음이라, 답변을 고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레비아탄 씨. 프로젝트 바벨을 기억하시나요.”

 

 

 그러나 페르네는 조금도 주체하지 않았다. 답변을 고르지 않는 건 그의 충동적인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코레 바닐레아가 조금 당황한 사이, 페르네 에트르는 입을 열었다. 레비아탄의 표정이 구겨진 것 같기도 했지만, 나는 시선을 내리 깔았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

 

 

 “저는 프로젝트 바벨로 세상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알아요. 노력이 어떻게 재능을 이기겠어요. 저는 이 삶에 만족한답니다. 과거와 무방하게요. 그러니 이데아가 오래오래 유지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히어로들에게 영향력을 행세할 생각도, 그렇다고 무언가 제 뜻을 펼칠 생각도 없어요. 기껏 가진 평화로운 삶, 그러나 약한 몸으로 오늘 내일 하는 나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수습되는 이데아를 바라보며 눈을 감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레비아탄 데카라비아에겐 딱히 와닿지 않는 말일 것이다. 나는 부러 곱게 웃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레비아탄은 존칭을 집어치웠다. 프로젝트 바벨이 운운되는 것에 대해,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코레 바닐레아는, 페르네 에트르는 위축되지 않았다. 그 쪽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올 걸. 그랬으면 그가 잡아당기지 못함을 비웃으며 머리카락을 흔들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참하게 구겨지기 직전인 레비아탄의 얼굴에 웃음이란 꽃 한 송이를 쥐어주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어요. 어떤 식으로도 계승되는 기억이란 건 있습니다.”

 “코레 바닐레아.”

 “틀렸어요, 레비아탄 데카라비아. 코레 바닐레아를 부르지 마세요. 찾지 말아주세요. 세상은 나를 미치광이로 만들고 있죠. 귀신을 본다거나,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거나.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성적으로, 코레 바닐레아처럼 행동하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죠. 하지만 말이에요, 레비아탄 데카라비아. 멸망을 막는다고 막을 수 없듯, 충동 역시 막는다고 막을 수가 없더군요.”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숨 한 번을 들이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명계의 망상가를 기억하시나요?”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는 잘 마셨습니다, 후원금의 액수는 그대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아주세요. 저는 히어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피곤한 일에 절 껴 넣지 말아주세요. 단호할 정도로 빠르게 말을 이은 나는, 거의 도망치는 듯한 걸음으로 히어로 기관에서 빠져나갔다. 레비아탄 데카라비아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를 죽이려고 들까? 기밀 유지를 위해 기어코 죽여 버릴까? 나는 그것이 내심 두려웠다.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손이 덜덜 떨려서, 나는 결국 똑바로 눈을 뜨지 못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내가 예고했던 만큼의 후원금을 보내자, 레비아탄 데카라비아의 이름으로 답신이 돌아왔다. 후원에 감사합니다, 라는 형식상의 말이 친필로 적혀 있었다. 이따금 큰 액수를 후원할 때 절차처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편지를 보고, 죽을 것처럼 숨을 쉬지 못했다. 뒷장, 작게 적힌 글씨가 레비아탄의 것인지 확인도 제대로 못한 채 난로불로 그것을 던져버렸다.

 

 ‘기억한다.’

 

 그것은 비단 명계의 망상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그 참극을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건, 부정적인 방향이건. 코레 바닐레아는 알 길이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레비아탄 데카라비아의 기억 한 구석을 자리하는 것은 그 시절의 히어로, 그 시절의 빌런, 이데아의 멸망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것이 못내 두려워, 망상으로라도 그를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