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의 이름은 잃어버렸고, 자라나면서의 이름은 페르세포네였다. 죽을 때의 이름은 페르네 에트르였던 그 사람은 명계의 망상가, 사신의 주인, 타르타로스의 문지기로 24살이라는 짧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사실 요절이라는 말도 우스운 말이었다. 사살 당했다, 처형당했다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간의 욕심이 낳은 최악의 탑, 바벨의 실험체였고 동시에 이데아의 멸망을 야기했던 끔찍한 범죄자, 빌런이었기 때문이었다.
페르네 에트르의 존재는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애석하게도, 페르네 에트르보단 페르세포네로 알려진 그 사람은 세상에게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았다. 코레 바닐레아는 거울을 한참이고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페르네 에트르의 존재를, 그리고 그의 환생임을 자각한 순간부터 코레 바닐레아는 어느 순간 망상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원해서 끌어안는 것은 아니었다. 통제되지 않았고, 의지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제멋대로 피어나는 망상을 막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함께 걷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망상들은 대체적으로 30년 전의 그들을 그려냈고, 어쩔 때에는 페르네 에트르가 직접 나타나기도 했다. 코레 바닐레아가 눈이 아리도록 거울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네….”
그도 그럴 것이, 거울에는 코레 바닐레아만을 비추고 있었지만, 코레 바닐레아의 눈에는 그가 페르네 에트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명계의 망상가는 무슨 색 심장을 지니고 있었을까. 코레 바닐레아가 전생의 기억을 되찾고 나서 가장 먼저 내뱉은 질문이었다. 페르네는 코레를 향해 웃어 보였다.. 평소에 짓던 웃음보다 훨 배는 행복해보여서, 그래서 아름답기까지 한 미소였다. 외롭게 살았고 외롭게 죽어갈 코레보다 훨씬 더 즐거워보이기 까지 했다.
죽기 싫어서 발버둥 쳐놓고, 죽음을 원하지 않아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져놓고. 마지막 순간에 왜 한 번의 반항 없이 순순히 떨어지는 창날을 받아들였을까. 왜 두 손을 놓고 도망치지 않았을까. 기억이 돌아온다고 감정이 100%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코레 바닐레아와 페르네 에트르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코레 바닐레아가 인상을 찌푸리자, 페르네 에트르가 말을 걸었다.
‘웃지 그래?’
그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받아서 죽을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꿈만 같았고, 꿈은 언제나 페르네에게 달콤한 것이었다. 그러니 이 사랑스러운 꿈이 깨지기 전에 죽자, 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론 역사에 이름은커녕, 존재마저 부정당한 채 죽어버리겠지만 기쁘게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그렇게 죽었다. 페르네 에트르는 미련하게 살아갔고 미련하게 죽은 머저리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코레 바닐레아와 페르네 에트르가 닮은 점은 없었다. 기껏해야 꼽자면 이능력 정도일까. 페르네 에트르는 망상의 세계에서 자신이 구축해낸 명계의 존재들을 현실로 끌고오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바벨이 낳은 페르세포네의 이능력, 타르타로스의 문지기들. 반대로 코레 바닐레아는 살아 숨쉬는 사람을 자신이 구축해놓은 허구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환각 계열이라는 뜻이었다.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쓰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부모에게도 비밀인 이유는 그냥 본능적으로 숨겨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본능적인 확신은 과거의 페르네가 ‘히어로 같은 건 되고 싶지 않아.’라며 울었던 각오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시 태어나도 빌런이 될 거야. 그리고 다시 그들을 만날 거야. 사랑한다고 할 거야. 나는 나의 에트르가 너무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다고 할 거야…. 미련한 일이었다. 현재 에트르의 성을 이은 사람이 생겨도, 그 영혼을 계승한 사람이 나타나도. 결국 그 시절을 기억하는 별종은 코레 바닐레아 혼자일 텐데. 그마저도 페르네 에트르가 아닌 타인의 모습일 텐데…. 코레 바닐레아의 생각을 읽듯, 페르네 에트르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나 혼자 뿐이어도 괜찮아. 그냥 내가 그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만 기록되면 그만인 거니까요.’
“헛소리. 실체도 없잖아.”
‘네가 있잖아.’
“나는 에트르가 아니야.”
‘아니. 너는 나야. 나는 너고. 우리는 영원히 그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벗어나지 않을 거야. ‘감히’ 그 이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 죽여 버리고 싶어질 것 같으니까.’
코레 바닐레아는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무의식의 행동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페르네 에트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하게 웃고 있었다. 이 몸의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는 걸까. 현재인가, 과거인가. 망상인가, 실체인가. 코레 바닐레아는 극도의 피곤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울 안에 있는 페르네 에트르가 손을 흔들었다. 끔찍했다.
코레 바닐레아는 결국 비척비척 걸어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가슴에 잔존하는 그리움이나 사랑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매일 밤 속이 쓰린 지, 코레 바닐레아는 알 수가 없었다. 바벨에서 느꼈던 고통이나 괴로움, 일생을 가득 채웠던 외로움은 코레 바닐레아의 것이 아니었는데. 왜 나는 내 것도 아닌 것에 휘둘리며 이렇게 전전긍긍 앓아야 하는지. 코레 바닐레아는 페르네 에트르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귀를 막으면 막을수록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비단 그가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코레 바닐레아는 결국 페르네 에트르였고, 페르네 에트르의 혼잣말은 결국 코레 바닐레아의 혼잣말이었다.
코레 바닐레아가 중얼거렸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 보고 싶어.”
페르네 에트르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너무너무 보고 싶어.”
코레 바닐레아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사용인은 조심스럽게 옆 사람에게 물었다. 아가씨, 미치신 것 같아. 옆 사람은 경을 치며 사용인을 혼냈다. 잘리고 싶느냐 소곤소곤 화를 냈지만, 그도 내심 코레 바닐레아가 미쳤다는 설에 동의하고 있었다. 귀신을 보는 것처럼 중얼거린다거나, 이유를 알 수 없게 갑작이 화를 낸다 등의 행동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용인들은 알지 못하겠지만 코레 바닐레아의 그것들은 꼭 고집불통의 어린아이, 통제되지 않는 망상의 주인, 명계의 까마귀나 할 법한 행동들이었다.
페르네 에트르의 잔해라는 뜻이었다.
'그 명계에도 봄은 다시 오는가.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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