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그

惣山

하나자와 사쿠라코가 나카하라 팀에 합류했을 때. 걱정했다. 남몰래 그의 영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이미 그는 나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마른 초원에 불덩어리가 하나 툭, 떨어졌다는 뜻. 그와 합을 맞추면서 적당히 바람에 불똥 튀기지 않는 법을 배웠다지만 영영 안 튈 수도 없다.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그의 배경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리거나 거절하는 것도 불가능해 왔지만…. 하나자와는 아니지 않나. 상냥한 아이다, 친절한 아이고, 따뜻한 온도의 태풍이지. 재능도 있으니 함께 하면 의지는 될 것이다. 허나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성이 없다. '나'보단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라서. 상대방의 뜻과 상관없이 스스로의 판단 하에 희생할 사람이라서. 그 배경에는 자신감과 신뢰가 아닌 의무, 책임감, 그리고…. 낮은 자존감. 혹은 혐오감. 에카와 카츠에와 지독하게 맞지 않는 사람이다. 에카와 카츠에가 먼저 도망치거나, 하나자와 사쿠라코가 먼저 단념하거나. 그 꼴이 될 건 보지 않아도 안다. 마른 초원, 불덩어리, 태풍. 조합 한 번 끝내주네. 

 

하지만 중재할 마음은 없었다.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제삼자인 내가 방관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애당초… 중재할 구멍도 없었다. 하나자와 사쿠라코는 올곧은 사람이다. 한 번 막는다고 막힐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가 에카와 카츠에를 우상처럼, 은인처럼 여기기 시작했다면 내가 그에 대해 어떤 흉을 늘어놓아도 하나자와 사쿠라코의 '나카하라 하루토'는… 뭐, 그가 인류대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닌 이상 변함없는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자와 사쿠라코를 말릴 수 없다. 나는 질문을 잘하는 거지, 단념을 잘 시키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면 에카와 카츠에를 설득해야 할까. 아니,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를 말린다거나, 설득한다거나. 전부 그의 선을 침범하는 행위니까. 그의 선은 지독하게 두껍고 넓어서 내가 반 걸음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느끼거든. 그럼 가시를 세운 채로 급하게 도망치고 말아. 반드시 타인을 상처 입히겠다는 의지까지 드러내면서 말이야…. 나는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봤다. 슬금슬금 다가가는 것부터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자극해 봤자 좋을 건 없다. 여태까지의 내 모든 행동을 눈 감아주는 것은 내 행동이 정답이었거나, 그의 너그러움 때문이 아니다. 모르는 척 허락해 준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래서 에카와 카츠에의 앞에선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도 바라선 안 되는 사람이니까. 그것이 그가 제시한 유일한 조건이었고, 나는 그걸 꽤 잘 지켜왔으니까. …아닌가?

 

아무튼. 그가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느리게 접근하려면 또 어떤 형태의 배려를 행해야 할까.

그가 못 견디고 제 초원에 불을 지를 때 팔 한 번 잡으려면…….

 

 

"네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 모르는 척 넘어가며 알려줬으면 알아서 피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나 잘 알면서 왜 그런 얼굴로 봐. …왜, 네가." 

 

 

실패했다. 앎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 그게 아니면 조심스러움, 그게 아니면 성급함… 투정이 과했나? 하지만 잘못은 당신이 먼저 했다. 반 걸음보다 좁은 보폭을 내디뎠다고 이렇게 바로 도망칠 줄이야. 이거 딛는다고 선을 넘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겁쟁이. 비겁자. 치사한 사람. 공안 내에서 치사하기론 치요 다음일 거다, 에카와 카츠에!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놓고 내가 취한 행동은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슬슬 보통의 소우야마 아키가 '그렇다고요.' 라며 떠날 타이밍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게 통 안 된다. 그렇다면 질문의 방향을 살짝 바꾸자. '나'는 왜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랬다. 나를 상처입힘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했다고 생각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겁쟁이인 주제에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서. 나를 신뢰하지 않아도 괜찮으나, 질문을 너무 섣부르게 포기해서. 그래서 속단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싫어서. 그래서 고집 좀 부렸다. 그게 나빠? 책을 덮어놓고 나에게 이렇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오늘은 조금 심통 좀 부렸어. 아마 배가 고파서 그럴 수도 있겠어. 본인이 주인공인 책이라면 마땅히 타인을 파악해서, 그 사람의 서사를 적어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짓을 하나도 하지 않잖아. 정해진 엔딩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잖아. 그걸 위해선 스스로의 인생이 어떻게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듯 굴잖아.

 

그게 뭐야. 나를 제2의 '에카와 카츠에'로 만들 생각인 거야?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봐."

 

 

안타깝게도 나는 보편적인 애정이 무엇인지 안다. 사카에 마비유코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어 장례식 내내 제정신을 붙잡지 못했다. 촛불도 안 흔들릴 바람에 휘청거렸고, 너무 울어버린 나머지 눈물도 죄 다 말라버렸다. 하지만 그 사건이 사카에 마비유코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마르지 않는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사카에 마비유코의 영혼 반쪽은 죽어버렸지만, 인생의 사랑은 멀쩡히 살아남아서. 나는 그 사람에게 애정과 사랑을 배웠다. 그러니 절대로 당신과 같은 애정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배울 수도 없고, 배우는 순간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다. …아니, 취소. 깨물어 죽진 않을래.

 

아무튼 에카와 카츠에와 다른 사람인 소우야마 아키가, 에카와 카츠에만의 애정을 백날 천날 받아줄 수는 없다. 그것이 그가 알아야 하는 점이고, 언젠가의 소우야마 아키가… 에카와 카츠에를 이해할 수 있는 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두 명이 죽고, 네 명이 살아남은 사건에서. 그마저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만족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소우야마 아키는 야금야금 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앎의 기본은 이해이며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접근은 너무 쉽게 들켜버린다. 그때부터 준비한 걸음이었다. 그러니 실패했다 한들, 가시에 찔렸다 한들 이제와 상처받을 것도 없다. 애당초의 소우야마 아키는 '상처받지 않는다.' 그건 무지의 인간이 기대했을 때나 겪는 사건이니까. 그게 에카와 카츠에에겐 안타까운 소식이겠다. 전해주진 않을 거지만. 

 

그의 독백과 같은 중얼거림을 들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유추한 말일 수도 있겠다. 뭐가 됐건 하나자와나 코바야시가 이 풍경을 보면 안 될 텐데. 덩치가 작은 것이 이제와 조금 아쉽다.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망가트리고, 상처 입히고, 떠나보내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 살아남았겠지.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을 들었으면 죽지도 못하고 맹목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 보세요, 에카와 카츠에 씨. 당신이 허락해 준 당신은 턱도 없이 적어서 아직도 내 호기심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답니다. 어렴풋 당신과 내가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면 당신일 거라고 생각해 왔어요. 말한다면 당신에게 하고 싶었고요. 그런 저를 찔러봤자, 제가 뒤돌아 떠날 리는 없다는 걸 당신이 아셔야 할 텐데. 

 

 

"…이제, 필요 없어. 더 이상 봐주는 것은 없으니까, 주제 넘게 굴지마. 네 말대로 궁금한 게 없어서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 뿐이야. 비꼬든, 뭘 하든… 알아서 해. 더이상 나도 이따위로 굴지 않을거니까. 그러니 너도 제대로 '나카하라'로 불러. 빌어먹을 이름으로 부르지 말란 소리야. 알아 들어?"

"카츠에." 

 

 

그리고 내가 명령 잘 안 듣는 꼴통으로 소문난 지 오래라는 걸 잊으면 안 될 텐데. 

 

 

"저에 대해 궁금해해달라고, 질문해 달라고 하는 투정만은 아니에요. 궁금한 게 있으면 내뱉으라는 투정에 가까운 거죠. 대답할 수 있는 참고서가 눈앞에 있잖아요. 아무리 버림에 어려움이 없는 책이라지만, 안 쓰고 버리면 아깝지 않겠어요? 어차피 어른이 되었을 때 옆에 남는 건 참고서 따위가 아니에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이겠죠. 예행연습이라고 해요. 언젠가 좋아하는 책을 찾았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요. 그리고 당신이 저지른 속단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얼마나 이상한 오답이었는지 겸사겸사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애정을 바라는가. 아니. 그런 걸 바랄 나이는 지났다. 내어준다면 기쁘게 받아내겠지만 나는 이 이상 당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게 당신의 피로가 되는가? 흠. 그건 어쩔 수 없으니 적당히 감당해 줬으면 좋겠는데. 손을 뻗어 에카와 카츠에의 손을 잡아끌었다. 딱히 힘은 주지 않은 손이었다. 눈 좀 봅시다, 중얼거림만 얕다. 사람을 이해하는 필수 조건이 뭔지 아는가. 이름을 알고 있을 것, 눈을 똑바로 보는 것이다. 뭐, 그 외의 조건도 있긴 하지만. 어머나, 나는 벌써 필수 조건을 두 가지나 충족했네? 이제 와서 발 빼기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싫었으면 들키지 말았어야지.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나는 표정을 한 번 갈무리하고,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 안에 어떤 감정이 숨어있건, 드러나건. 그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궁금한 게 없어도, 질문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건 제 투정이었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저 같은 녀석이야 카츠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니까 괜찮겠지만. 필요 없다거나, 알아서 하라거나. 그런 말만 하고, 자꾸 도망치면서 자기혐오나 하고 계시면. 그러다 정말로 끝내버리면 남는 사람이 카츠에처럼 되기 딱 좋아요. 그러니 저는 계속 이 거리를 유지하면서 카츠에라고 부를 거예요. 싫으면 돌아가서 퇴출시키세요. 공안에 저만한 캐스터는 없고, 이미 인력은 부족이고, 저는 이미 제법… 많은 걸 알고 있는데 기억 조작은 죽어도 안 할 사람이거든요. 배짱 장사 장난 아니죠? 저도 알아요."

"…….."

"주제 넘게 구는 거 알지만, 그래도 조금 더 봐줘요. 카츠에처럼 말하자면 언젠가 미련 없이 끝날 사이인데. 그러면 있을 때 이 정도로 구는 건 괜찮잖아요. 나중엔 그리워질 걸요. 누가 그리워할지는 신만 아는 일이겠지만, 일단 저는 하지 않으면 후회하고… 그리워하는 타입이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23.04.11
惣山  (0) 2023.04.05
ㅅㅇㅇㅁ  (0) 2023.04.04
惣山  (0) 2023.04.04
惣山  (0) 2023.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