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지난 번에 팀장님한테 혼났어요. 저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제가 조금 위험한 짓을 했거든요. 아무리… 취재…에 눈이 멀었어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아요. 안 그래도 팀장님 표정이 꽤 안 좋아서 망했다, 싶긴 했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야만 했어요. 설명할 시간도 부족하고, 설득할 시간도 부족해서 통보만 했는데… 잘 알아듣고 도와주더라구요.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풀려서 후배에게 업혀갔네요. 하나 양은 참 상냥해서 다행이긴 한데, 야시 군은 그런 순간마다 조금 얄미워요. 그 날 업혀가는 절 보고 얼마나 웃던지. 저도 모르게 딱밤을 때려줄 뻔 했어요. 그것때문에 저도 모르게 조금 의기소침 했나봐요. 두 그릇 먹으니까 배부르더라고요. 그 빈약한 식사량에 팀장님이 신경 쓰이는지… 아, 팀 내에서 저는 돼지로 통한다고 이야기 했던가요? 저번에 팀장님이 저를 청돼지라고 저장해두셨지 뭐예요. 충격받아서 한동안 조금 먹으려고 노력하니까 또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더라구요. 너무 식탐 있는 녀석처럼 군 것 같아서 자제하려는 것 뿐인데. 사람이 이상한 곳에서 섬세하고 상냥하다니까요…. 상냥할 거면 혼낼 때 좀 덜 무섭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전 하나 양보다 말을 더 잘 듣는 타입이라구요. 야시 군만큼은 잘 듣는 건 아니지만…. 너무 무게감 있게 혼내서 힘들었어요."
"아하하. 너는 고집을 좀 꺾을 필요가 있어. 그렇게 혼내지 않으면 분명 네가 또 고집부릴 걸 아니까 그렇게 혼내는 거겠지."
"아니거든요. 전 고집 그렇게 많이 안 부려요. 그냥 애당초 한 번 화낼 때가 엄청나게 무서운 사람인 거예요. 제가 고집 꺾고 유순하게 굴어도 무서울 게 분명한 걸요."
"어머? 네가 고집을 꺾었으면 화낼 일이 없겠지."
"…이보세요, 사카에 여사님. 제 편을 들어주셔야죠. 왜 팀장님 편을 드세요?"
"네 얘기 듣다보면 네 팀이 보살이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단다. 너희 팀 사람들에게 잘 해. 괜히 어리광 부리지 말고, 고집 좀 덜 부리고…. 그래도 다행이야. 엄마는 네가 이번에도 잘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했거든. 대학교는 양반이었지. 네가 옛날로 돌아가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어. …엄마 말 잊지 않았지?"
이제 슬슬 '소우야마 아키'가 '다녀왔어요.' 라고 말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문을 열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건 멎지 않은 코피 때문이었다. 내가 정의한 소우야마 아키는 대단히 변화가 적은 사람이었다. 한 계단을 오르는 등의 소소한 성장은 꾸준했으나, 같은 건물을 계속 오르내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늦어지려거든 변명이라도 보내야 할 판이었다. 다만 나는 늘 침묵 외의 거짓말엔 소질이 없었고, 꾸며내려고 해도 그게 영 어려워 죄다 들통나는 멍청이였다. 해서 문 앞을 계속해서 서성거렸다. 코피가 멎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멎지 않은 게 마법처럼 멈출 리 없었고, 나는 문을 열고 나를 반기는 사카에 마비유코와 눈이 마주쳤다.
아, 엄마…. 사과의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사카에 여사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끌어 나를 집 안으로 데려왔다. 이젠 그가 속상하다는 것을 묻지 않고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속상함을 드러내지 않고자 노력할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타인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정도로 신체능력이 좋지 않았고, 싸움이 이어진다면 코피로 끝나는 게 양반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그도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걱정을 참으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고, 종래에는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에 마비유코는 소우야마 아키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조금 가지고 있다. 15년 째 변하지 않은 제 딸이, 언젠가는 조금씩 바뀌기를. 이는 어미 된 마음이다.
어느 부분을 콕 짚을 수는 없겠으나, 소우야마 아키가 사람들 사이에 융화될 수 없다는 것은… 장례식 이후부터 분명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자에게 '어째서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느냐.' 라는 것을 울지 않고 물어본다의…. 돌발행위가 그 쯤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 질문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어쨌거나 소우야마 아키의 성격은 점점 심화되어, 사회에 녹아들기가 힘들어지고 말았다. 세상은 사건 사고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는 취조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그 정보로 좋게 말하면 가장 최선의 값을 찾는 것이겠으나, 소우야마 아키의 경우는….
죄송해요. 사카에 마비유코의 상념이 깨진다. 걱정하셨죠. 소우야마 아키는 좋은 딸이었다. 뭐, 효녀라고 부르기에는 사람 심장 바짝바짝 마르게 하는 경우가 잦아 불효녀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그걸 알고 있어 끝없이 나를 안심시켜주는 아이였다. 한 번 손 벌려본 적 없을 정도로 성실한 아이였고, 단점이라 생각되는 한결같음이 이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주변 사람은 그런 소우야마 아키와 함께 걷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겠다. 허나 소우야마 아키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버거움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소우야마 아키는 상처받지 않는다. 그래서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