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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장의 편지.

 요즘 화재가 되고 있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스타작가 페르세포네 씨를 모셨습니다! 라는 소리와 함께 강단 위로 걸어 올라온 사람은 제법 작은 사람이었다.

 

 필명 페르세포네. 미성년자의 나이로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등장한 혜성 같은 천재로, 성인이 되기 전부터 꾸준히 글을 투고해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자마자 많은 이들의 기대대로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페르세포네가 손수 적어 내린 글들은 대체적으로 SF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계열의 글들이었다. 대단히 참신한 소재인 것도, 엄청난 실력을 드러내는 것도 있었으나 페르세포네의 강점으로 꼽히는 건 공감성이었다. 누구나, 한 책을 읽으면 비슷한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다는 점. 그리하여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 페르세포네의 책은 말라비틀어진 동심의 소유자에게도 현실 너머의 초현실을 그려주게 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주 분야는 현대 판타지. 페르세포네가 정식으로 데뷔한 지 이 년이 채 되지 않아, 페르세포네가 집필한 장편 소설 <명계>는 페르세포네를 현대 판타지의 거장으로 만들어주었다. 그게 가능할 정도로 훌륭한 글이었고, 현재 페르세포네의 <명계>는 …를 뜨겁게 달구는 소설이었다. 그의 나이는 고작 스물 넷이었는데, 그동안 써둔 글이 많았는지 몇 번의 교정교열만 끝내고 바로 출간하기를 반복했다. 그리하여 출간한 책만 ■■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책들은 전부가 베스트셀러로 등단되었고, 다른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조차 뒤처지지 않는 성적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앞으로가 기대되는 작가였다. 인터뷰와 언론을 넘어 예능과 시사프로그램 등 각종 매체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것으로 사람들의 지지도와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흑보랏빛 머리카락을 곱게 풀어헤치고 붉은 눈을 접어 웃는 것만으로도, 그는 연예인을 넘어선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물넷의 생일, 그러니까. 9월 9일이 다 끝나가는 돌연 휴식기를 선포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잠시 글을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툭 내던진 것은 거의 통보에 가까웠다. 페르세포네의 글은 여러 미디어 맥스로 뻗어나갔고, 그것에 대한 소식은 꾸준했지만 그로부터 12월이 될 때까지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12월 25일. 페르세포네의 SNS 계정으로 단 한 문장이 업로드되었다.

 

 우리는 우리를 기억하고 있나요?

 

 페르세포네는 워낙 SNS 활동이 뜸한 작가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활발했지만 이런 뜬구름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게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일 게 분명하다 입을 모아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해가 끝날 때까지 페르세포네의 차기작은 어떤 언론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다. 페르세포네의 휴식기는 그렇게 3개월이 지난 다음 해까지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작가 페르세포네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나갔다. 페르세포네는 단 한 번도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4월 5일. 돌연, 서점 중앙에 신간이 출시되었다. 저자의 이름은 페르세포네. 긴긴 휴식기 끝에 그가 드디어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 이상하게도 현대 판타지 소설이 아닌,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그 책은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황폐화된 세계와 살아남은 나.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끝없이 나는 누구인지, 내 이름은 무엇인지, 우리는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어딘가 불쾌할 정도로 집요하였으나, 문학적으로 봤을 때에는 페르세포네의 그 어떤 글보다 뛰어나다며, 올해에 이 이상의 소설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라는 극찬까지 받았다. 고작 신간으로 서점에 들어간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50만 부를 훌쩍 팔아버린 페르세포네의 신간에 대해, 페르세포네는 SNS에 이런 글을 올려두었다.

 

 열두 권의 책과 편지를 남겨두었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누구도 그 말의 뜻을 알아채지 못했다. 책의 홍보를 위한 글이라기엔 사진도 없었고, 부가 설명도 없었으며, 그 이후로 페르세포네는 SNS에 무언가를 업로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은 빠른 시간에 100만 부가 판매되었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페르세포네의 문학적 명성은 더더욱 높아지면서, 페르세포네는 조용히 자신의 SNS 계정 이름을 바꾸었다. 이것이 본명인가, 사람들이 추측했지만. 매체에 등장한 것에 비해 신상정보를 꽁꽁 싸매 알려진 게 없는 작가라 사람들은 이 이름의 뜻을 눈치채지 못했다. 페르세포네도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꽃이 저물어가 푸르른 잎사귀를 피워낼 5월 5일. 페르세포네는 강단에 올라섰다.

 

 한 방송사에서 스타작가 페르세포네를 강연에 초청하고, 독점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페르세포네는 웬만한 연예인의 팬미팅 못지않게 몰려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면서, 사회자가 내민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페르세포네 씨는 말이죠, 원래 고상한 이미지로 방송에 나오셨는데 말입니다. 네, 맞아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가 좋다고 해서 머리를 풀고 나왔죠. 그런데 오늘은 어떤 연유로 양갈래를 하셨는지? 제가 좋아하는 헤어스타일이거든요. 가족들이 자주 묶어줘서. 사회자가 웃었다. 화목한 가족이로군요. 페르세포네가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족들이었죠.

 

 이후 사회자가 몇 번의 말을 더 얹었다. 페르세포네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페르세포네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글 하나만으로 이만큼의 인지도를 쌓은 사람이니만큼, 별 다른 말 없이 책 몇 구절만으로도 페르세포네를 설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페르세포네는 팔랑거리는 원피스 자락의 끝을 매만지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남에 따라 고개를 들었다. 자연스럽게 웃으며, 마이크를 고쳐 쥐었다. 아아, 안녕하세요. 페르네입니다. 그것은 대본과 다른 인사였다. 이름은 페르네고요, 성씨는 에트르예요. 방송작가들이 놀라 화면을 바라봤다. SNS에는 [특종]이라며, 작가 페르세포네가 본명을 공개했다는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페르네는 술렁이는 관객들을 돌아보며 태연스럽게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9월 9일은 제게 있어 특별한 날이에요.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역시나 대본에는 없던 이야기였다. 거대한 방송사고가 벌어진 것 같다며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페르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잠에 들었는데, 제가 제법 엄청난 꿈을 꿨지 뭐예요. 여러분들은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역사에 기록되어야만 존재가 증명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억에 남아야 존재를 남기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술렁이던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그것은 페르세포네가 집필한 책, ■■■■■가 끝없이 던지던 질문을 닮아 있었다.

 

 저는 제 생일날에 꿈을 꿨습니다. 존재가 사라지는 꿈을 꾸었어요. 세상의 그 누구도 저를 기억하지 못했고, 역사 그 어느 곳에도 제 이름이 적히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존재하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저를 아주 간절히 오랫동안 생각해주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들을 열렬하게 사랑하고 그리워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누군가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저는 어떤 존재일까요. 남의 기억으로 기록된 나와, 남을 추억으로 존재시킨 나. 그것은 뭐라고 불러 마땅한 존재일까요?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페르네는 태연하게 웃으며 강단 위를 천천히 걸었다. 프랑스어로, 존재를 뜻하는 말이 있습니다. 에트르, 라는 것인데. 저는 그 말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기록되고 싶어 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니까요.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인생을 걸고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제가 쓴 책을 읽어보셨나요? 그렇다면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긍정했는지, 부정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록했는지. 스스로 답을 찾으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추억만으로도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강단 밑의 스태프 좌석이 소란스러웠다. 오늘의 연설은, 페르네의 휴식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면서 몰아치는 슬럼프와 마감, 그리고 주변의 열렬한 환호와 기대에 맞춘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페르네는 대본을 완벽히 배신했다. 페르네는 강단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쭉 걸어 도착했다. 카메라를 올곧게 바라보면서 페르네는 천천히 웃었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을 품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다음 생에서도요. 스태프들이 급하게 강단 위로 뛰어올라왔다. 작가님! 거대한 방송 사고의 현장에서 태연한 것은 페르네 혼자였다. 관객들이 술렁거린다. 뭐지? 오늘 이야기할 내용이 저거였어? 아닌데, 팸플릿에 보면 슬럼프를 극복하는 법으로 되어 있었는데…. 모든 소란을 뒤로하고, 페르네는 입술을 떼어냈다. 편지를 썼는데, 도저히 주소를 모르겠어서. 페르네의 미소는 어딘가 슬퍼 보였다. 아직도 저는 기억을 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제 존재를 인정해주고 계신지. 페르네의 마이크가 뚝 꺼졌다. 그러나 화면은 아직까지 페르네를 비추고 있었다. 궁금해요. 너무나도. 입모양이 손쉽게 읽혔다.

 

 열두 권의 책을 남겨두었습니다. 열두 권의 편지 역시 남겨두었습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열세 장의 편지를, 내일 매듭짓고자 합니다. 제 존재를 적어 내린 스물다섯 장의 편지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나요?

 

 화면이 꺼졌다. 조명 역시 꺼졌다. 스태프들이 황급히 페르네를 데리고 무대에서 내려간다.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에는 사회자 혼자만이 강단 위에 서 있었다. 잠시 강연에 대한 착오가 생겨 조율을 진행하고자 하오니,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식은땀은 관객석 맨 끝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반짝였다.

 

 그로부터 10분이 지난 뒤, 다시 무대 위로 페르네가 올라왔다. 저는 슬럼프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것은, 제가 이제는 쉬어야 할 때임을 알게 되어서였어요. 정상적인 대본대로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무가치하거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위로가, 조언이, 충고가 될 만한 강연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아까 전 페르네가 한 이야기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고, SNS를 불태웠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실패한 강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페르네는 조금의 후회도 없는 표정으로, 만족스럽게 15분의 강연을 끝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강연이 완전히 끝나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가려는 찰나.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페르네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었다. 기자였다. 페르네는 기자를 곁눈질로 돌아보며 차에 탑승하려다, 돌연 걸음을 멈췄다. 기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페르네에게 바짝 붙어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페르세포네 씨, 강연 당시 한 이야기는 무슨 뜻을 갖고 있습니까? 페르네는 그를 아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으나, 금세 사그라들었기 때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양갈래를 고정하고 있던 꽃봉오리 머리끈을 살살 풀어냈다. 

 

 9월 9일에 꿈을 꿨어요. 이데아에 관한 꿈이요. 그곳에서의 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춤을 췄어요. 참 아름다웠죠. 우리는 구더기가 들끓는 라벤더 꽃밭에 누워 눈을 감았어요. 붉은 파도가 우리를 감싸 안았고, 하얀 하늘이 잿더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죠. 우린 행복했어요. 정말로요. 기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페르네는 기대도 하지 않은 것처럼, 시선을 살짝 기울여 허공을 바라봤다. 사랑하기로 했어요. 아주 오랫동안요. 우리는 신화가 되지 못했고, 역사에 제대로 이름 적히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의 마음에는 아주 깊게 새겨 넣은 글자가 있어요. 저는 그것을 아주 사랑해서, 너무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놓을 수가 없어서……. 페르네가 입을 딱 다물었다. 기자는 침을 삼켰다. 차의 문이 열리고, 페르네는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 잠시만요! 기자가 페르네를 붙잡았을 때에, 페르네는 차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금세 창문이 열리고, 기자에게 페르네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속삭임을 건넸다.

 

 당신들의 페르네가, 에트르의 이름을 되찾았어요.

 그리하여 스물다섯 장의 편지를 갖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어서, 나를, 만나러 와요.

 

 다음 날. 페르네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은 SNS와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페르네는 SNS 계정에 별다른 해명을 늘어놓지 않았고, 보란 듯이 5월 6일, 신간을 출간했다. 4월 5일에 출간한 책은 존재에 대한 의문과 사랑, 그리고 가족에 대한 미련이 뚝뚝 담겨 흐르는 책이었다. 그러나 5월 6일. 모든 논란 속에서 펼쳐진 책의 내용은, 남겨진 사람들의 고뇌와 후회,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존재가 지워진 사람들을 끝없이 추모함으로 존재를 몇 번이고 덧그린, 생존자들의 이야기.

 

 그 책의 제목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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