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로그

답장

To. 친애하기 그지없는 영원의 천사, 나의 에게. 

 

 

 안녕하세요, 페르네 에트르입니다.

 보내주신 편지는 기쁜 마음으로 펼쳐 읽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펜을 직접 들어 써주셨을 모습을 상상하니, 저는 그 편지를 아주 소중히 대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포장을 뜯는 것도 조심스러워져 몇 날 며칠을 망설여버렸기 때문에, 답장을 적는 지금조차 너무 많이 머뭇거리기 때문에. 받은 날에서부터 편지를 보내는 날의 공백이 길어졌음에 대해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리오나 씨께서 꾸신 꿈은 어떤 꿈이었을까요? 저는 꿈에 대해, 거창한 해석이 가능하거나 능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점이 참 아쉬워요. 꿈 속의 리오나 씨께서는 날개를 달고 계셨겠다 하니, 아무래도 리오나 씨께서는 전생에 천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틀린 말도 아닐 테고요. 어머니라 불리신 감정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기쁘셨나요? 익숙하고 슬프다는 느낌보다는, 행복이 더 크길 바랐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바라는 대로 맞닿기란 불가능했나 봅니다. 그 점이 참 아쉽지만, 너무 슬프기도 하지만. 탓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런 짓을 할 바에야, 이 편지에 한 글자를 더 눌러 적는 게 기쁘니까요.

 

 리오나 씨. 저 역시도 꿈을 꿨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며, 저는 물웅덩이를 밟았어요. 발은 움직이지 않아 서 있기도 힘들었지만, 저는 굳은 살이 박힌 단단한 손에 의지해서 한참을 돌았습니다. 수많은 악기들이 웅장하게 합을 맞춰 소리를 터트렸고, 저는 울 수가 없어서 웃었습니다. 도저히 출 수 없는 춤을, 상대에게 의지해서 춘다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 비참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시절의 저는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온기는 따듯하니까요. 결국 저는 춤을 끝맺지 못하고 상대에게 안겨 울음을 터트렸습니다만, 그 사람은 웃어주었습니다. 다정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제 어머니였다는 사실에 감사할 정도로,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리오나 씨, 너무 슬퍼하진 말아주세요. 당신의 슬픈 얼굴은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선연히 보이는 듯 하여, 눈을 감고도 분명히 그릴 수 있어. 편지지를 적시게 될까 두려우니까요. 우리는 무척이나 슬퍼졌지만, 기쁘지 못한 마음으로 안녕을 고했지만. 그래도 그 추억은 행복했어요, 즐거웠어요. 아무리 암담해도 우리는 우리를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로 구원받을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웃어주세요. 이번 생은 행복만 가져가야죠. 

 

 감정에 답장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짓인지, 그리고 제가 할 수 없는 일인지. 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도움이 되길 바라지만, 리오나 씨가 원하는 만큼의 답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언제나 미숙한 그대로고, 당신은 미숙한 제 손을 잡아주었으며, 앞장서 걷는 것은 언제나 어머니 셨기 때문에…. 이젠 옆자리를 공유해 나란히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로 제가 자라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 편지를 받고 나니, 저는 아직도 어린 그대로임을 깨달았습니다. 글로 도저히 적을 수 없는 감정만이 흘러나와, 편지지를 몇 장이고 갈아치웠는데도 글을 다듬을 수가 없어서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 적으면 이 맥락이라곤 없는 편지에 눈물자국만 뚝뚝 찍여, 도저히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아 말을 줄이겠습니다. 비록 리오나 씨에겐 자식이 없으시겠지만, 에트르의 이름 아래 당신이 안아주었던 열 두 명의 아이들을 언젠가 다시 사랑해주세요. 답변이 부족할까 주소와, 남겨두었던 편지를 동봉합니다. 당신을 위한 책은 동봉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언젠가, 직접 마주하면 내어드리고 싶어요. 어머니, 저는 이런 사람이 되었어요, 라고 소개할 수 있게요. 그런 날이 온다면, 그리하여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날에, 저와 한 곡 더 춰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머니의 발을 밟는 불효녀는 되고 싶지 않아, 조금 연습을 해두기도 했습니다. 기대하셔도 괜찮으실 거예요.

 

 답장을 기다리진 않겠습니다. 어머니도 어머니의 삶이 있으시니까요. 어머니, 지금 행복하신가요? 저는 당신이 행복하리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너무 비참하니까요. 그런 세상은, 전부 죽어버리길 바라니까요. 당신이 웃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너무 오랫동안 슬퍼 마세요. 슬퍼진다면 기다리겠습니다. 사랑받는 행복의 나날에게 아주 오랫동안 위로받고 와주시길 바라요. 저희는 서로를 위로하긴 커녕, 부둥켜안고 울기 바빠 죄책감만 한가득 안고 갈 사람들임을 알고 있으니까. 우린 그 정도의 미련한 사람들이니까.

 

 …사랑해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편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From. 무한한 사랑을 담아, 에트르의 딸, 가.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일 답장  (0) 2021.04.13
스물다섯 장의 편지.  (0) 2021.04.13
여름이 몰려와도 추모는 영원했다.  (0) 2021.04.12
망상의 연장선.  (0) 2021.04.12
어떤 세계의 우울.  (0) 2021.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