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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영원히.

(손이 떨어짐에 따라, 세이렌은 눈을 멀뚱히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떼어내 줬네. 음, 그러니까. 불편하다는 걸까? 사람의 속내는 알아채기 힘든 면모를 띄고 있다. 세이렌은 -어느 부분에선 예리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둔감한 게 분명했다. 어색하게 제 뺨을 긁적이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듣고 있음을 표현한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 이곳에 온 너, 그리고 나. 내 말을 들어주는 네가 어쩐지 어색해서, 나는 몸을 베베 꼬고 싶어졌다. 너는 정말로 내 생각에 동의하고 있는 걸까. 사상에, 긍정을 표하고 있는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아주 얕은 의심이 새자, 세이렌은 낮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글쎄. 그건 내가 말하기 어렵네. 나는 선해지기 위해서 노력해. 지키려는 마음은 선할 때, 진가를 발휘하거든. 다만, 내 행동이 얼마나 선한지는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선행이 어려운 거야.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해야 하는데, 나는 세상이 아니잖아. 모를 수 밖에 없는 거지. 다만, 카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네가 선하다고 생각해? 알아. 네가 보이는 건 위선도 뭣도 아니라는 거. 그냥, 네 경험과 의지를 토대로 행동하는 거라는 걸. 그건 선이나 악으로 나누기엔 애매한 마음이라는 거. 그래도 어떡해. 세상은 둘로 나뉘는 게 보편적인데. 그래서 사실 나한테 물어도, 그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어. 나는 늘 네가 선하길 바랄 뿐이야. 설령 악마와 손을 잡고 춤을 춘다고 해도. 재투성이 숲길을 거니는 마녀라고 해도. 

 

하지만 그래선 안 돼. (단호하다. 세이렌의 눈에 드물게 힘이 들어간다.) 네가 이루었다는 거 알아. 그게 무엇이건. 내가 알고 있던 누군가는 떠났고, 내가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왔다는 것 정도. 지난 세월로 하여 추측하고 있어,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지금의 너는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고 있지, 이루겠지. 예전과 다른 생각, 다른 마음, 다른 사상으로 행동할거고, 그걸 네 스스로 선하다 여긴다면 그건 너의 선이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와 뜻이 다른 이들을 악으로 지칭해선 안 돼. 도망치는 건 나쁘지 않아. 결과가 좋아야만 해냈다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실속이 있다고 마냥 옳은 게 아니듯, 만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듯. 그들을 이해해야 해. 악이라 규정되는 이유가, 너를 부정했기 때문이 어선 안 돼. 그들을 미워할 수는 있어도, 멋대로 규정하는 건 위험한 일이야. 

 

(잠깐의 공백.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세이렌이 눈을 느리게 접어보인다. 웃는 것과 다름이 없지만, 입꼬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아. 웃는다는 인상은 흐릿하기만 하다. 싫어했다, 라거나. 불행해 보였다, 라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불행은 아니지만, 나는 충분히 연약했고, 휘둘렸다. 최악을 가정하는 성품이라는 게, 어떻게 좋아 보일 수 있겠는가? 그러니 쪼그려 앉은 채로, 무릎을 감싸 앉는다. 네 눈에 히어로답게 보인다면, 그거 역시 영광 이리라. 점점 웃음이 새어 나와, 배시시 웃는 낯으로 카임을 응시한다. 그 모든 이유에 너희들이 존재한다면. 너희들이 빛나니까, 그 그림자에 녹아들어 함께하려면. 나도 빛나야 한다는 사실을 너희가 가르쳐줬다고 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너희'에 스스로를 넣지 않으려나? 아니면 기뻐서 웃어주려나.) 

 

이해해. 울보, 겁쟁이, 한심한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법이지. 하지만 난 그 시절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어. 조금 자랐고, 조금 많이 배웠지만, 여전히 나는 울보에, 겁쟁이에, 조금은 한심해. 아마 소용돌이가 몰아치면 다시 휘청이고 말 거야. 하지만, 그래. 나약하지 않고자 노력했고, 노력 하고 있어. 네가 이제 나를 조금 좋아해 주는 것 같아서 기뻐. 너희에게 밉보이기 싫었던 어린 마음이 이젠 성숙해졌구나,라고 느껴져서. 응, 너희 덕분이네. 네 덕분. 앞으로도 노력할게. 히어로 다운 사람이 될 수 있게. 더 멋있어지기 위해. 오랫동안 지켜봐 줘야 해, 알겠지? ~바로 자제해준다니 기쁠 뿐이야. 

 

(정말 예상한 그대로 말해주는 구나? 그건 조금 기쁘네. 내가 그만큼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어? 이건 기뻐할 게 아니야? 속삭이며 눈썹을 늘어트렸다. 소중하다, 라는 말은 너무 당연하고 흔해서. 솔직히 기뻐할 만큼의 무게가 실려있느냐, 물으면 세이렌은 늘 '모르겠다.'라고 대답할 뿐이었지만. 소리가 커지는 것에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자신을 끌어안는 것에 놀라 무릎이 땅에 닿는다. 어? 엥?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러나 떨어지거나, 밀치는 행동은 없어, 이 행동이 싫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야, 친구잖아.)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야. 나도 네 인간관계 안에 들어갈 수 있어서 기뻐. 그러니까, 음, 범위가 겹친다는 건 늘 기쁜 일이야. 기쁠 수밖에 없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해질 수 있다는 뜻이고, 어쩌면 소중하다는 뜻인데.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도 그렇게 말할게, 손에 닿아서 다행이야. (다시는 어디로 안 갔으면 좋겠다. 얼핏, 눈꺼풀 안 쪽으로 흔하디 흔한 상상을 해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확신이 없는 이상 내뱉기 곤란한 법이니까.) 둘 다 틀렸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런 말은 넣어둬도 좋아. 그냥, 음, 그렇구나, 싶을 뿐이야. 조금은 감정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되도록 애써봐야지, 라는 감상? 네가 좋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팀으로 껴주긴 하는 구나. 나는 네가 실습도 혼자 가서, 혹시 '싫어.'라고 말할까 봐 걱정했어. 등을 느리게 토닥이며, 세이렌이 웃음을 터트렸다. 옅은 물거품과 같은 소리였다.) 그렇게 할게. 근데, 음, 나 취해도 버리지 마. 자신 없거든. 어느 정도가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일다 살살 달리는 걸로 하자. 건배사는 꼭 하고 쓰러져야 하잖아…. … 그것도 좋다. 그날만큼은, 조금 긍정적인 세이렌이 되도록 할게. 훌륭한 어른이 될 우리들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일 테니까. 너도 웃으면서 와줘. 기대하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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