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 부끄러우니까 제대로 못할 거야. 거울 보다가 찔찔 울기 시작하면 노력의 의미가 없어질 걸. 하지만 이 지경까지 왔는데, 정말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겠지? ……다음에 괜찮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분하다는 투로 눈을 질끈 감는다. 머리가 파밧 헝클어졌지만, 그것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세이렌이 반 박자 늦게 고개를 들어, 옆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내 표정은 저주받은 걸지도 몰라…. 역시나 생각은 우울하게 흘러가고, 괜히 표정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수습해주는 손길에 고개를 맡기면서 세이렌이 눈을 깜빡인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쪽이 편하다, 라는 것은. '아직까지 내가 편하다.'라는 결론 아닐까? ~제멋대로 단정 짓는 것이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세이렌이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려본다. 큼, 헛기침 한 번.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러면 시야 앞에서는 이렇게 있을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기쁜 법이니까.
잠깐, 잠깐잠깐, 잠, 잠시만! 그런 의미라는 게 아니잖앗! 삐죽 소리가 샌다. 두 주먹 꼭 말아 쥐고 이야기하는 것이 퍽 다급하다면 다급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상황에서 내가 울면 조금 유리해질 것 같은데.' 정도의 생각은 자주 했습니다만, 그런 타이밍을 잡기도 전에 울어버린 걸 보면 계산보다 감정이 앞서는 게 아닐까!? 따위의 변명이 횡설수설 이어진다. 영악한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영악하다, 라는 말은 뭔가 이상하다고? 그런 말 들어버리면, 어쩐지 정말 누군가를 파도에 밀어 넣는 사람이 될 것 같다고!? 허둥거리던 것은 시야의 표정이 풀림에 따라 진정된다. ……그렇구나. 나는 또 속았구나….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런 말 안 해. 나에 대해서 드러내고, 얕보이거나 약점 잡히고 싶지 않아. 방관만 하고 싶어, 개입하는 게 아니라. 히어로지만, 나는 그쪽이 더 쓸모 있는 타입의 사람이니까. … 너희니까 하는 말이지, 너희니까. 세이렌이 눈을 깜빡거린다. 어디까지 진심, 이라거나. 말의 거짓, 을 구분하는 건. 세이렌의 인생에서 늘 어려운 일로 분류되곤 했다. 정답을 제시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진심이라는 것은 내게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라…. 하지만 세이렌은 생각보다 빠르게, 선선하게 말을 늘어놓는다. 응, 싫어하지 않아. 내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으니까.
말이라는 건 무서운 거야. 내뱉었다면, 지켜야만 해. 나는 말의 위험성과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아. 한 마디로 사람을 침몰시키다보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어.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고민한 뒤에 입술을 벌려야만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내뱉었지. 예전에도, 지금도. '싫어하지 않을게.' 하면서. 물론, 네 밑바닥을 가늠할 수 없으니. 지금의 말은 자만과 다름이 없겠지만. 시야, 아무래도 그 미지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내가 너희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가 봐. 아주 나쁜 생각을 가졌다면 말을 걸어볼게. 왜 그렇게 했을까,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같이 노력해서 고치면 돼. 그러면 내가 널 싫어할 이유는 하나 없는 거니까.
조급함과 포기. 이어지는 단어에 대해서 애석함을 느낀다. 고작해야 열아홉에 불과한 우리들은 무엇에 그리 쫓기고 있는 건가. 네 상황의 전부를 모른다는 것 역시, 애석한 일이었다. 무슨 말을 더 늘어놓을 수 있을까? 반복하지만, 고작해야 열아홉인 내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한계가 분명했다. 슬픈 일에, 눈물이 조금 샐 뻔 했다. 그렇구나. 단조로운 대답이 이어지고, 세이렌은 진심으로 슬퍼졌다. 이미 지쳐버린 사람에게, 힘을 내라는 만큼 의미 없는 것은 또 없으니까. 그냥 옆에 오래 있어줘야지, 앞으로도 계속 친구가 되어야지. 나만큼은 변하지 말아야지. 단순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뿐이다.
생각이 끊어진 것은 볼이 눌린 뒤. 으,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배우면 안 돼? 안 배우는 편이 나아?! 사람들은 모두 포기와 만족을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게 될 테고. 조금 이르게 포기하는 것이, 조금 빠르게 만족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세상에서 너는 너와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바란다는 게, 나는…. 상냥함도, 사랑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생겨나는 감정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또 있을까. 나는 이 우울의 나날에서 너희들을 만난 것으로 천운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과의 관계는, 붙잡고자 하는 미련은, 차마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잖아. 나는 입을 떼지 않았고, 고개를 살짝 숙여 제 손과 시야의 손에 고개를 기댄다.
붙잡는 데에 노력을 쏟아보라며. 달라 붙어주면, 노력을 덜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내 기쁘겠네. 장난스러운 어투, 그러나 감긴 눈으로 하여 농담인 지 알 수가 없겠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을까?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장난을 친 적이 없어. 내뱉은 건 지켜야지. 말할 수 있는 건 해내야지. 나는 말의 위험성과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아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번에도 똑같이 말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 그러면 아직 그 정도는 감당 가능한 걸로.확정! (땅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