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일이 있었고. 참 많은 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살아가는 모든 것이 부럽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무섭습니다. 환상에 안주해 살아가면 행복할 것을, 어찌하여 아득바득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눈 하나 깜빡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세계는 행복한데, 왜 불행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걸까요. 저는 상상에 잠겨 익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살아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저는 행복해지고 싶었어요. 행복이란 건 추상적이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저는 저의 행복을 위해 끝없이 낙원을 갈고 닦았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영원한 겨울의 명계라지만, 제게는 따듯한 공간이었고, 제게는 다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나날에 갇혀 사는 것은 옳지 못한 짓이었나요. 하지만 제게는 그것뿐이었습니다. 네, 그래요. 정말 그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세계의 멸망을 바라고 있습니다. 포기했다지만. 포기해버렸다지만. 그럼에도 이 세계가 미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나에게 아무것도 쥐여주지 말지.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게끔 하지. 모든 것을 잊게 하거나, 모든 것을 버리게 하거나, 가질 수 없게 하거나. 세계의 이치가 바란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악취미로군요. 제가 절망의 늪을 허우적거리는 것을 즐기셨나요. 기쁘게 지켜보셨나요. 혹은 슬퍼 울음을 터트렸나요. 그 무엇도 저에겐 가식, 위선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저는 이 세계를 증오합니다. 차라리 모두가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죽일 수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참았어요. 힘내서 참아봤어요. 당신들이 아직 살아가는 세계에, 그리고 앞으로의 당신들이 살아갈 세계에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인내조차도 사랑이 됨을 나 스스로 알아버려서. 행복하신가요. 행복할 수 있으세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아니면 이 세계가, 정말, 무너지길 바랄 것 같아서. 포기하는 것도 나아가는 일이지요. 전부 놓는다고 하여 도태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똑바로 바라보고, 똑바로 인정하는 것. 그것만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연약하고 가련한 인간. 해낼 수 없는 것을 위해 발악하는 것만이 나아가는 방법이라 불리지 않더군요. 조용한 작별 인사도, 단순한 납득과 인정도, 전부 나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아버린 저는, 너무 미련한 걸까요. 한심한 사람일까요. 하지만 어쩌겠나요. 혼자서 배우는 일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이것보단 쉬웠을 텐데. 텅 빈 손을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던 저는, 무언가를 배우는 것보단 결국 흘러나갈 바닷물을 연거푸 뜨는 법밖에 몰랐는걸요. 당신들의 페르세포네는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움을 아주 많이 타고, 사랑받고 싶었으며, 하루하루 행복해지기만 하고 싶었던. 그런, 평범한, 아이.
사랑이라는 말을 담기엔 종이가 짧습니다. 그리움을 적기엔 내 마음이 너무 연약합니다. 그 어떤 감정을 눌러 담아도 전할 수 없을 것을 알아 담백하게 이 모든 글을 끝마치고 싶습니다. 그 어떤 감정은 이따금 제가 사랑한 모든 것을 상처 입히고 마니까요. 이미 나는 너무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아서, 당신들이 나와의 기억을 슬프게 여길까 조금 무서울 뿐입니다.
지금의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인어공주는 울음을 터트리며 물거품이 되었지만. 결국 바다가 되어 왕자의 평생을 지켜봤을 테니까요.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무형의 것. 그리하여 자꾸만 행복을, 슬픔을 안겨주는 것. 저는 아주 많이 슬플 것이고, 아주 많이 행복할 겁니다. 바다는 어디로든 흐를 수 있는 영원. 나는 꺼지지 않을 명계의 주인.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한 송이의 석류꽃. 그리하여 봄. 그리하여, 겨울.
만일 비가 쏟아지는 밤에 제 꿈을 꾸신다면 그때에는 다정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영원의 겨울처럼 살아 숨 쉬고 있을 저에게 한 마디 다정을 내어주시면 안 될까요. 한 번의 포옹, 한 송이의 꽃, 마지막 작별과 애정의 입맞춤. 사랑은 만남과 작별, 흘려보내는 감정들.
저는 잊힐 테고, 지워질 것이며,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영원히 살아갈 겁니다. 우리의 죽음이 영원하지 않았듯, 저의 망각과 죽음도 영원하지 않을 거예요. 인어공주는 죽지 않았으니까. 물거품이 될 뿐이니까….
이 명계에도 봄이 다시 올까요?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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