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남길 것 조차 없는, 굉장히 부끄러운 인생이었습니다만. 받아온 사랑이 과분하여 붓을 들었습니다. 어딘가에 내세워도 자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여태껏 지켜봐주심에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가진 것은 열등, 잘하는 건 시기, 뛰어난 건 질투.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큰 결함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이 삶을 살아가며 두 손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친 사랑으로 어떻게든 종지부를 곱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보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는 배은망덕함을 오래 곱씹진 말아주세요.
아라마의 사람으로서 시시한 죽음을 맞이함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무언가의 결말을 맺기엔 저는 늘 모자란 사람이었고,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저를 긍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무언가를 남긴다면, 시시하게 죽어버리지 않는다면. 분명 훗날의 누군가가 피를 보게 될 걸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제가 없는 나날을 살아갈, 저를 좋아해준 누군가겠죠. 어떤 길을 걷게 될 지, 삶을 살아가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진다면 그 감촉을 잊지 말고 소중히 간직해주시겠습니까. 행운이 깃들길 바라며 소소하게 끼얹은 기도입니다. 바람의 형태가 축축한 까닭은, 나의 성질이 그러하기 때문이겠죠. 흔적이 길게 남는, 그러나 언젠가는 사라져버릴. 참 시시한 저를 닮은 얼룩이겠습니다.
나의 두 눈은 황금과 별을 녹여 굳힌 것이라지만. 실상은 그저 밝은 노랑임을 압니다. 그것이 반짝이는 것은 내가 다 받아내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사랑 때문이었지요. 담기지 못한 것이 겉으로 흘러 넘치다보니, 마음을 대변해야 할 눈이 신기할 정도로 반짝였나봅니다. 그러니 언젠가, 제가 보고 싶어지면 밤하늘의 별을 바라봐주세요. 금가락지를 바라보아도 좋고, 달맞이 꽃을 응시해도 좋습니다. 사랑을 담은 마음으로 노란 것을 바라보면, 그 날 꿈에는 제 눈과 마주할 수 있으시겠지요. 그리고 그 눈에 당신이 비춰질 겁니다. 그 순간의 당신이, 나를 너무 그리워 말고…. 상냥히 웃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 유서를 읽어볼 사람들은 몇 되지 않음을 압니다. 전부 하나같이, 제가 빚을 진 이들이겠죠.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제 방 가장 안 쪽의 자개함을 열어주세요. 미약하게나마 보은을 하고 싶어, 없는 것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이 적힌 장소와 차마 전하지 못한 낯간지러운 말들을 적어뒀으니 괜찮다면 봐주세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도, 그 물건을 바꿔줄 나는 이제 없으니 소중히 여겨주면 기쁘겠습니다. 그래도 역시 마음에 들어하는 쪽이 행복하겠네요.
마지막으로, 이 집은 언제나 열려있을 겁니다. 사소한 이유로 와도 좋고, 거창한 이유로 와도 기쁠 겁니다. 발걸음이 무거워지면, 내가 없더라도 들려 쉬고 가세요. 이 장소는 나의 것이기에, 나의 성질을 닮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존재감이 잠깐의 휴식을 허락케 한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겁니다.
이 뻔하고 시시한, 한심한 글이 끝나갈 때 쯤에는 오늘이 끝나고 내일이 시작되겠지요. 그 사이 어제가 잊혀질 겁니다. 제가 없는 하루하루는 낯설기도 하겠지만 그 역시 어제처럼, 금방 잊혀질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슬퍼 마시고, 나의 무덤에는 꽃 한 송이만 얹어주세요. 그 곳에는 나의 시체가 없을 겁니다. 호수에 흩뿌려지는 것은 잿가루가 아니라 별가루이길 바라거든요. 그럼, 사랑하는 이들에게.
Stay warm, Mich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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