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말에 느슨히 웃음을 터트린다. 아니, 나는 궁금해. 가벼운 태도로 대꾸하며, 세이렌이 고개를 기울인다. 시선이 데구르르 떨어지고, 다시 올라가 엘리야를 향하면 입이 열리고 만다.) 너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애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당혹스럽긴 하지만, 그런 사생활을 모르고 싶을 정도로 매정하진 않아. 알고 싶어.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 이상하지? 하지만 어쩌겠어. 마음이라는 건 늘 이런 식인데…. …후후, 하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나는 실물보다 작게 보이는 걸. 어떻게 신고 다닐 수 있어, 가 아니라. 어떻게든 신고 다녀야 해. 이상하게 엄하지? 하지만 적응되면 생각보다 할만하더라…. …물론 싸우기 시작하면 운동화로 갈아 신어야겠지만. 이런 걸 신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면, 그쪽이 더 이상하단 말이야….
없지. 네 말이 맞아. 그런 존재는 있을 수가 없어. (음, 그것을 즐기는 사람 제외.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남들보다 잘 견디는 사람은 있지.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거 알아. 결국 곪아 썩어버리거나, 터져버리겠지. 그렇게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칼을 들어 상대방을 찌르면 안 돼. 바늘에 찔려 상처가 났다고 하여, 상대방을 죽여버려서도 안 돼. 세상이 불합리하니까. 상처를 되풀이하면 안 되는 거야. 참지 않을 거라면 온전한 방법을 취해야 해. 스스로를 치료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저지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상처가 생기면 안 돼. 최악을 막기 위해 또 다른 최악을 저지르는 건, 상황의 해결이 아니잖아. …날 꼬시려고 했던 말이야? 하하, 녹스에서도 나를 노리다니. 이거, 영광인 걸….
그게 사람의 한계인 셈이지. 하지만 구멍이 났다면 누구나 그 깊이를 가늠하려고 들어. 자신의 비참함을 알아둬야 하거든.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메울 수 있고, 막을 수 있으니까.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표정을 보게 되는 게 우리잖아. 그가 흘린 눈물을 이해하는 게 세상인 걸. 이따금 원근감을 지워내는 감정이라는 게 존재해. 이상하게 들릴까? 나는 너무 많이 봐서, 이렇게 밖에 비유할 수 없었어. 그렇게 끝날 추락이면 다행이지만 비행은 누구게나 공평하지 않아. 날개를 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개조차 못 가진 사람들이 있지. 구멍은 계속 자라날 테고, 언젠가 아물 테지만. 추락은 영원할 것이고, 비상은 제한적일 거야. 그렇다면 그냥. …가라앉자. 마음의 구멍이 익숙해질 때까지 쉬었다가, 그곳에 끼워 넣을 마음의 조각을 찾자. 날아가지 못할 존재들에게, 아물 기회를 내어줘야만 하니까.
엘리야, 별빛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태양이 저물어서야. 새카만 밤하늘이 몰려왔기 때문에 내 두 눈 아래에서 빛날 수 있는 것들이 밝음이야. 속았다고 하여, 진실을 모르지 않아.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사실, 별이 안 뜬 밤을 좋아해…. (만지작거리던 머리카락의 끝을 끌었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손을 떼어낸다. 쏟아지는 불길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무너지는 태양과 짙어지는 장대비 속에서 내는 소리는 노래인가, 비명인가. 나는 본질을 알아챌 수 없어서, 느슨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내가 언제 네 말을 온전히 들은 적 있었니, 엘리야. 나는 못 해. 꺾을 수 있는 순간이 와도, 결국 손을 거두겠지. 네가 살아가길 바라서.
시시한 약속이구나. 마땅히 너를 계속 사랑하겠지. 하지만 네 조각의 일부가 되진 않을 거야. 함께라는 건 동화되는 게 아니니까. 두 사람 분의 발자국이 찍혀야 하는 게 함께 걷는 길이니까. 영원하고도 올바른 사랑은 없어. 하지만 기대할게. 살아서 보여줘.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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