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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배자들

# 02.

 

 

 

중간 맥락 전부 생략하고 보고 싶은 것만 연성하는 사람 어때 섹시하지

 

 

#. 

"오늘의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탈옥한 5명의 이능력자가 잡히지 않은 지, … 일째가 되고 있습니다. 당국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을 내놓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사살도 서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
"이번 정찰은 전하고 똑같이 두 팀으로 나눌 거야. 나는 여기에 있을 거고…."

"잠깐만. 전하고 똑같다면 나랑 트리거, 네르샤랑 크레바스. 이렇게?"

"응. 왜?"

"반대야."

"으?"

"반대라고."

 

 

#.

한월은 굳이 그래야 할까,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반대했다. 조편성은 자신이 할 거라고 하나, 뭐라나. 그래서 나와의 언쟁을 제법 벌였지만, 결국에는 한월의 뜻대로 조를 새로 짜고자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정말로. 내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단 말이다! 하지만 한월은 '굳이' 조를 짜고, 정찰 계획을 세우는 것에 나를 '제외'하여 진행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그것만큼은 양보하지 못하겠어서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는 내 목소리를 차단한 것 마냥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해서, 말을 하면 할수록 진이 빠지는 것은 나 혼자였기에, '네 마음대로 해.' 라며 자리를 박차고 말았다.

 

 

#. 

"엥? 왜 나 혼자 돌아다녀? 글라우코피스는 절대 그러지 말라 했는데."

"오늘은 괜찮아."

"뭔 일 생기면 님이 책임지는 거?"

"그건 아니지만."

"참나."

 

 

#.

오늘로서 확신한다. 유한월은 계획을 짜는 것에 재능이 조금도 없다! -그는 한 기업의 CEO였지만. 아무튼 조금도 없다!- 조합을 고려하고, 계획과 효율을 중요시할 거라고 믿고 맡긴 건데.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여?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해도, 하필이면, 네르샤랑 나를 붙여놓다니! 제정신이냐 소리치고 싶은 충동에 그를 찾아갔지만, 그는 이미 크레바스와 함께 나간 지 오래란다. 참나. 참나!! 어이가 없어서!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네르샤와 함께 아지트를 빠져나왔다. 나는 그의 결정을 조금도 지지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비전투인원인 나를, 그것도 네르샤랑 같이! 정찰이 끝나면 그는 내게 먼지가 되도록 털려야만 할 것이었다.

 

 

#.

"…왜 그랬어?"

"응?"

"글라우코피스의 생각을 반대한 거. 그리고 글라우코피스가 제일 싫어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짠 거."

"아, 그거."

"원망 들을 걸."

"상관없어. 두 명 이상 모인 그룹에서는 악역 한 명은 꼭 필요해. 너도 알잖아, 크레바스."

 

 

#.

트리거는 조용히 돌담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얼마만이지? 혼자 있는 건. 가벼운 상념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그는 철저하게 두 명 이상 행동할 것을 권고받았다. 트리거는 탈옥 이후, 그 말을 철저하게 지켰다. 두 번의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실수였나? 트리거는 조용히 다리를 흔들다가, 그림자로 수직 낙하했다. 발소리는 별로 나지 않았다. 

 

 

#. 

"글라우코피스가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아. 솔직히, 걔 결정, 나도 지지해. 인정한다고. 근데 우리가 지금 남이고, 개인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잖아. 죽든, 살든. 우리들은 한 팀이어야 하고, 적어도 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한 뜻으로 움직여야만 해. 그런데 어제 어땠지?"

"최악이었지."

"그래. 팀워크도, 협동심도 조금도 없어. 글라우코피스의 말에만 의지해서 행동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어. 게다가, 그 말을 100% 잘 따라주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지."

"그래서 이런 식으로 구상한 건가. 나랑 너는 큰 문제가 없으니까. 글라우코피스랑, 네르샤랑의 관계를 회복시킬 생각으로. 그리고 트리거는…."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할 계기를 줘야 하니까. 일단 닥치면 뭐든 나오겠지."

"생각 잘 했네."

"별말씀을."

 

 

#.

"혹시 이거 깜짝 카메라 아님?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날 혼자 둬도 되는 거임? 혼토? 레알? 리얼리? 마지카요…."

 

 

#. 

나는 지팡이를 부러트릴 듯 움켜잡았다. 이가 갈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 뭐가 어쩌고 저째? 내게 만약 무기가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힘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그를 벽으로 밀쳤겠지. 네르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장미꽃 너머의 시선이 어떤 형태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지팡이로 땅을 내리 찍었다. 네르샤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선배, 왜 그렇게 화내요?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요." 나는 그의 목소리를 싫어했다. 치가 떨리게 말이다. 나는 아직도 부엉이가 전달해준 모든 풍경과 음성을 잊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잊을 수가 없어서….

 

 

#.

"근데 지금은 딱히 좋지 않아. 너는 트리거 쪽으로 가. 나는 글라우코피스를 찾아볼게."

"…응?"

"글라우코피스는 어려. 고집이 세고, 자기가 다 옳다고 믿어. 하지만 네르샤는 아니야. 성숙함 이전에, 겁이 너무 많으니까. 서로를 이해하긴커녕, 역효과만 날 거야."

"잠깐만. 어리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는데, 걔네는 이미 성인이야. 그 정도는 이제…."

"걘 마음이 어려. 그래서 안 돼."

 

 

#.

"선배. 혼자 갔다가 빌런이라도 만나면 어쩌게요?"

"닥쳐. 내가 알아서 해."

"그러시든가요."

 

 

#.

"응? 크레바스는 어디다 두고?"

"확인할 게 있어서. 네르샤랑 글라우코피스랑 연락 돼? 난 글라우코피스가 날 차단해서…."
"에~ 당연히 안 해봤는데~"

"지금 해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며….]

"열, 글라우 칼차단 대박쓰."

 

 

 

#.

나는 묘하게 서럽기까지 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 판단이 옳아, 내 생각이 맞다고! 그런데 왜 하나같이 내 말을 따라주지 않는 건지. 내 판단을 뒷전으로 미루는 건지! 여태까지의 그들은 내 말을 따라줬다지만, 이제부터는 안 들으려는 작정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무리에서 이탈하는 게 낫겠어. 나는 이를 악물고 지팡이로 땅을 두드렸다. 크레바스는 왜 내 편을 안 들어준 거야? 유한월이 혼자 짜겠다고 했을 때, 반대해줬으면 됐잖아. 걔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트리거는 왜 혼자 보낸 건데! 그리고 네르샤. 네르샤는. 나는 걸음을 멈췄다. 속이 쓰렸다.

 

 

#.

"선배. 아직도 독단적인 성격 못 버리셨네요."

"너랑 얘기할 맘 없으니까 말 걸지 마."

"그러니까 미움 사는 거죠. 선배랑 같이 일한 히어로들 중에, 오래 일한 사람 없잖아요?"

"말 걸지 말라고 했어."

"이 팀도 곧 망하겠네요."

"닥치라고!"

 

 

#.

"제가 선배를 왜 떠났겠어요. 당신 행동 하나하나가 질려서 그러지."

 

 

#.

나는 희미한 화약냄새를 맡았다. 수 명의 발소리도 똑똑히 들렸다. 내 신분은 범죄자, 탈옥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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