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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

(2)
어떤 세계의 우울. 그리하여 우리들은 패배를 인정했다. 더 이상의 발악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의미 없는 싸움을 이어가며 괴로워질 바에야, 그저 우리끼리 함께했음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나는 나를 끌어안는 온기에 눈을 감았고, 그리고 우리들은 재앙과 같은 걸음 소리에 맞춰 문을 열었다. 여덟 번째 세상이 밝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헉. 나는 서늘한 감촉에 눈을 떴다. 가위에 눌린 듯 몸이 무거웠고, 식은땀이 멎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헛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뱉었지만 가슴이 오르내리지 않아 숨쉬기가 몹시 불편했다. 눈만 겨우 굴려 보인 암막 커튼 사이로 햇빛이 선명하게 들이치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어쩌면 조금 늦은 아침. 나는 이것보다 일찍 일어났는데, 어째서 일어나지 못했을까. 망상에 잠긴 건 아니었..
망상가의 심장은 무슨 색을 띄는가. 비가 내렸다. 바닥에는 진흙이 고이고 비린 피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젠 움직이지 않는 시체 한 구의 팔을 잡아 들었다. 얘는 제 언니로 하고 싶어요. 조직원들이 혀를 내두르며 또 시작이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전 오늘 오빠랑 돌아갈 거니까 안 태워주셔도 돼요. 허공을 쥐는 나의 손을 본 건지, 한 조직원은 욕을 내뱉었다. 보스에게 말해서 내쫓든 해야지, 라는 말이 귓가에 닿았으니 다정한 나의 망상은 내 귀를 덮어 듣지 못하게끔 해주었다. 나는 순순히 웃으며 등을 돌려 떠나가는 조직원들을 봤다. 그들은 동료고 전우였지만 동시에 남이었다. 가족이 될 수 없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에 경멸이 뚝 고여 떨어진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허공을 쥐었고, 천천히 잠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