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2021. 3. 5. 13:39

 

 이건 단순히 세계에 남기는 일기. 한 순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겠지만, 결국 읽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요. 천 년의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계승받을 지는 모를 일이겠습니다만, 사실 계승이니 기록이니 아무래도 좋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겠죠. 묘비에 조차 적을 수 있을 지 의문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일기에서만 읽을 수 있게 될 우리의 이름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덧붙여지지 않을 겁니다. 그야 우리는 이 세계를 구해내지 못할 수도, 혹은 구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평화로울거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가겠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백 번의 각오를 다지며, 우리는 모두 괜찮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세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저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세계를 선물하고 싶기 때문에. 기록은 전부 무의미하고, 사랑만이 영원하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아무래도 좋다며 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속죄를 바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사랑하는 당신이 이 세계에서 행복하길 바라며.

 히어로가 되지 못한 우리가 이 곳에서 이름을 짧게 적어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