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2021. 5. 2. 02:28

 

 코레 바닐레아는 언제나 거대한 저택 안쪽에 꼭꼭 숨어 살아왔다. 약한 몸을 핑계로, 보모가 그를 감춰둔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거창하거나 대단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대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만들지 못했다거나, 눈에 차지 않는 딸이라서가 아니었을까. 전생이니 이능력 따위의 이유를 대기엔, 그들은 멍청했다. 딱 그 정도의 인간들임을 코레 바닐레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레 바닐레아는 길거리의 위험함을 모른다. 으슥하게 그늘진 골목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페르네 에트르는 알고 있었지만, 코레 바닐레아의 인생에서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페르네는 분명히 반대했을 터다. 하지만 호기심이란 건 무서운 법이지. ‘그 사이에 세상이 더 좋아졌을 수도 있다.’ 라는 결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런 결론만 갖지 않았다면, 이런 난감한 상황은 또 없었을 텐데. 코레 바닐레아는 양산을 든 채로 걸음을 멈췄다. 신발 앞으로 굴러떨어진 누군가의 앞니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베로나가 이렇게 과격한 사람이었나. 골목길 안을 훔쳐본 코레 바닐레아는 부러 눈에 힘을 뺐다. 히어로를 자주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다. 힘들기도 했다. 그 상대가 지금 누군가를 패는 중이라면 더욱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불똥이 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따위를 바라기엔 베로나의 사백 안을 피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히어로의 신체능력을 이 연약한 몸으로 능가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코레 바닐레아는 한숨을 깊게 삼키고, 예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뭐하긴. 상대를 거의 반 죽여 놓고 있겠지. 코레 바닐레아는 긴장을 숨기기 위해, 양산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베로나는 그런 코레 바닐레아를 한참이고 바라보더니, ‘저 사람이 누구더라.’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코레 바닐레아는 히어로가 아니었기 때문에 베로나와 마주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언가의 연결점이 있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베로나가 코레 바닐레아를 알 확률은 거의 0%, 그러므로 코레 바닐레아는 어떻게 선수를 쳐야 할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다. 각자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가고, 코레 바닐레아가 계산을 끝마친 순간. ‘지나가 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혓바닥 위를 굴러다닐 때 베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바닐레아 부부의 딸?”

 

 

 그 순간. 코레 바닐레아는 베로나의 표정이, 어딘가 고양이를 닮았단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흘릴 뻔했다. 그 웃음을 참느라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더니. 베로나는 어느새 손을 툭툭 털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바짓단에는 피가 튀어 있었다. 밑에 깔려 있던 저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겠지. 피 냄새가 났다. 애석하게도, 코레 바닐레아는 그 피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다.

 

 

 “데릭 님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 살다 보면 사건사고는 많이 벌어지니까요.”

 “오해는 안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정당방위였노라 말해준 베로나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그가 일어나자, 그림자 사이로 들이치는 거리의 햇빛들로 인해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산성 물질처럼 형광으로 빛나는 초록색 눈만이 아니라, 흉터투성이의 피부, 검은색 안대와 높게 올려 묶은 머리카락, 그리고, 줄줄 흐르지 않는 산성물질들. 코레 바닐레아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의 감탄마저 삼켰다. 베로나는 비죽 웃으면서 코레 바닐레아를 향해 고개짓을 했다. 어딜 다녀오느냐, 라고 묻는 듯한 행동에 코레 바닐레아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히어로 기관에 가고 있었어요.”

 “데려다줄까?”

 “당신이 왜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코레 바닐레아는 시선을 살짝 내려, 베로나의 발밑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검붉은 핏방울이 뚝뚝 고였기 때문에, 거의 웅덩이 하나가 완성되었다 해도 무방했다. 초록빛이 섞여 들어간 그 웅덩이는 누군가의 피부였던 단백질 덩어리가 둥둥 떠 있었다. 코레 바닐레아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심약하되 충성스러운 광견인 줄 알았더니, 어느새 그는 심약함도 비관적인 마음도 죄다 버린 채 광기를 닮은 충성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로나는 몰랐겠지만, 코레 바닐레아는 이 길목 안으로 들어오기 전, 길목 안에서 들려오던 소음에 대해 기억한다. 누군가를 향한 모욕이었고, 경멸이었다.

 

 히어로를 욕보였다고 죽어버리는 삶은 억울하다 여길 수 있는 걸까. 그렇다고 이 죽음이 정당한 걸까? 누구나 타인을 싫어할 수 있다. 미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죽어 마땅한 죄.’가 되는 걸까. 코레 바닐레아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에게로 성큼 다가오는 베로나를 곁눈질로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가 히어로를 얼마나 추종했는지 알고 있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모든 히어로가 선이 되어줬지. 브레이크를 걸고, 베로나가 필요 이상의 화를 내지 않게 제어해주었지. 그러나 지금의 베로나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말릴 필요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이 이어지던 중, 그리하여 도망치지 못한 코레 바닐레아에게 베로나는 손을 뻗었다. 양산을 가져가는 행위였다. , 하는 짧은 탄식을 뒤로하고, 베로나가 손목을 기울여 코레 바닐레아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데려다준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코레 바닐레아가 이것을 달갑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수축된 초록빛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경계심 때문이었다.

 

 그는 명백히 경계하고 있었다. 히어로들 사이를 누비는 외부인을. 그리고 30년 전 그들에게 접촉하는 듯한 나의 행보를. 혹여나 히어로들에게 30년 전, 그날에 관해 물어보고, 그 상처를 들쑤실까 걱정하는 건 아닐까. 30년이 지났대도 그 나날을 쉬이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피와 화약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인간이기에 보편적인 인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히어로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베로나라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지, 사랑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경계심을 숨기지 않는 것 역시 평범함이니까.

 

 나는 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딘가 싸늘해 보이기까지 한 그 한 개의 눈동자는, 코레 바닐레아를 똑똑히 응시하고 있었다. 허리를 살짝 굽혀 눈높이를 맞춰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조금도 다정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원망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코레 바닐레아는 딱히 이 에스코트를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손을 천천히 들었고, 베로나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베로나는 남은 손으로 코레 바닐레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다지 상냥하지도 않고 거친 행동이었다.

 

 

 “코레 바닐레아를 만나면 신사적으로 모시라는 레비아탄 님의 말이 있어서.”

 “그거참 영광이로군요.”

 

 

 나는 그와 함께 길을 걸었다. 우리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코레 바닐레아와 베로나는 미묘한 간극을 함께 걸었을 뿐이었다. 30년 전의 당신을 기억한다고 하면, 베로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두 사람분의 발자국이 초록색으로 뚝 뚝 찍히기 시작했다. 코레 바닐레아가 곁눈질을 하며 살피길, 그 옆으로는 조금 더 앳되고 어려보이는, 비관적으로 우울한 표정의 베로나가 서 있었는데 말이다.

 

 그렇기에 베로나는 코레 바닐레아에게서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경계심이 무색하게도, 그의 망상은 베로나에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골목길을 지나, 히어로 기관에 다 도착하였을 때. 코레 바닐레아는 즐거웠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였고, 베로나는 저야말로.’라며 고개를 숙였다. 평화를 되찾고 나니, 녹아내린 얼굴 가죽, 튀어버린 핏방울과 떨어져나 나간 이빨들은 그림자에 묻혀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