惣山
소우야마 아키는 자신의 호기심이 정상적인 형태에서 벗어났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공안 식으로 이야기하면, 지식욕은 곧 광기다~ 정도. 텅 빈 공허에 억지로 답변을 욱여넣는 과정은 보통의 호기심과 결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욱여넣은 것의 근원이 내가 아니어도 좋다, 상대의 것이어도 충분히 기쁘다. 세상의 것이어도 괜찮고, 미지의 것이어도 좋다. 소우야마 아키를 채워 넣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 대답이었다. 그것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해 주고, 소우야마 아키를 한 번 지켜주곤 했다. 알고 있으니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미쳐버린 뇌의 명령이라 할지어도 기쁘게 따를 수 있는 것은 그런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배경이 존재하기 위한 선행 조건이 무엇인가. 어떤 질문은 대답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호기심을 소우야마 아키는 광기라고 지칭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본질이라고 여겼으며, 천성이라고 주장한다. 광기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기 시작하니까. 정상이 아닌 아이로 낙인찍힌 아이의 삶이 얼마나 괴로운 지 소우야마 아키는 잘 알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 겪기도 했고. 사회에 녹아들어 살기엔 좋지 않은 표식임이 분명해서 극복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그 결과가 소우야마 아키다. 남들보다 과한 호기심, 괴짜, 이상한 녀석. 그러나 정상의 범위에 발을 걸친….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발을 걸쳤다면 필연적으로 '위화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소우야마 아키의 위화감은 생각보다 잦은 빈도로 등장하고 만다. 무대 위의 안개처럼 짙게 깔려, 눈을 감아주는 것이 아니면 눈치채기 마련일 터. 그렇다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소우야마 아키는 왜 그런 광기를 얻게 되었는가? …이는 제법 놀라운 일이지만, 소우야마 아키는 대답할 수 있다. 누군가 물어주길 기도하며 간절히 말을 골라왔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근사한 말이라, 소우야마 아키는 실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미련하게 기대를 하고, 미련하게 상처받기를 선택한 것도 용기니까. 그래, 나는 소우야마니까.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부딪혀보면 돼. 그러면 언젠가는….
하지만 인생은 소설이 아니다. 현실을 지독하게 겪고 나면 준비해 둔 발표 대본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것보다, 눈을 감아버리는 게 더 편한 세상이니 말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굳이 필요 없는 세계. 아키는 웃음을 지으며 벽을 두드렸다. 똑똑.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벽. 소우야마 아키가 세웠으나, 세상이 다듬어준 벽이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약간의 벽을 세우고 싶었을 뿐인데. 언제 이렇게 두껍고 단단해졌을까. 똑똑. 메아리치는 두드림에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나는 무리에서 태어나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됐다. 그것이 나의 탓인가. 아니면 세상의 탓인가. 나는 자그맣게 원을 그리고, 그 작은 구멍에 입을 붙여 속삭인다.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듣는 이는 없었다.
침묵이 능숙한 사람은 거짓말을 잘한다고들 한다. 내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순 거짓말이다. 나는 아직도 표정을 숨기는 게 서툴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게 힘들다. 바로바로 생각이 나지도 않거니와, 표정이 괴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겠지. 당신에게… 취조당하는 상황. 취조에는 나쁜 기억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소우야마 아키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대가 에카와 카츠에라는 점이겠다. 그는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면 무시했지, 필요 이상으로 나를 절벽에 떠밀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민간인으로 여기는 그 사람은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면 죽는 줄 알거든. 나는 이미 한 번 떨어져 본 적이 있어서 괜찮은데도 말이다. 몇 차례의 실랑이 속에서,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언제나 눈을 피하는 건 그 사람의 몫이었는데, 어째 조금 자존심 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런 걸로 자존심이 상할 소우야마 아키였다면 진즉 에카와 카츠에랑 대판 싸우고 퇴사했다. 애당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라는 말이었다. 네 이야기를 하라는 말이 얼마나 달콤하게 들렸는지, 에카와 카츠에는 모른다. 질문이 없으니 대답하지 못하는 나의 심리도, 에카와 카츠에는 모른다. 에카와 카츠에는 소우야마 아키를 알고 있다. 어느 날 미친 척 솔직하게 굴어놓고, '나를 이해할 리 없잖아요.' 라며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기는 애새끼. 그게 에카와 카츠에의 소우야마 아키려나.
서류로 볼 수 있는 소우야마 아키는 평범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특이점 외에는, 지독하게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일본인 S.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인간. 하지만 나는 서류로 적을 수 없는 수천 가지의 일을 겪어왔다. 그것은 너무 일상적인 특이점이라서, 당신의 세계와 정 반대의 곳에서 벌어져서. 당신은 알 수 없겠지. 눈치채지 못했을 거야. 당신이 겪어본 적 없는 일상이니까. 일상의 특이점 같은 건, 나 같은 민간인 아니면 못 겪잖아. 사실 눈치챘다 한들… 헤집을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 그러니까 묻지 않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알 필요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랬어. 불길한 아이니까. 내뱉는 대답을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생각을 파악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타인이 보는 소우야마 아키에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의 주변을 조사한다 해도, 소우야마 아키를 전부 아는 건 불가능.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그날의 비밀이 있다. 이해받지 못함을 확인하고 포기한 속내도 많다. 그래서 내가 죽어버린다면, 사인은 분명 질식사일 것이다. 말을 하지 못해서,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카츠에 씨, 저는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하지만 제게 무언가를 물어줄 사람은 주변에 하나도 없고, 모두가 상냥하게 덮어서 외면해주곤 해요. 모르는 척하고, 듣지 못한 척을 해요. 그러면 저는 다시 물거품을 내뱉어요. 보글보글. 그러면 문장이 완성되지 않고, 나는 대본을 잃어버리고 말아요. 그런 모습도 소우야마니까, 이방인인 나는 아무래도 좋은 걸까요?
궁금해요. 이방인인 당신의 시선의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 망가졌는지, 박살 났는지.아니, 당신은 나를 똑바로 보고 있긴 한지. 묻고 싶은 건 그게 전부인지.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더 많은지. 이상하다. 내 눈에는 내가… 아직도 소우야마 아키처럼 보이는데. 그거 알아요, 카츠에 씨? 소우야마 씨는 허무하게 죽지 않았어요. 죽음과 맞서 싸우셨다고요. 용기 있는 분이세요. 나는 그 용기를 이름으로 물려받았어요. 나는 소우야마 아키예요. 죽음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 그러니 망가지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아요. 이미 산산조각나본 적 있거든. 근데의 나는 살아있고, 멀쩡하죠. 그러니까.
"질문은 그게 다예요?"
말을 할 수도 있어요…. 나는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가쁜 숨을 갈무리하고 나니, 평소의 표정을 짓지 못할 것도 없다. 그래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 어깨뼈 부러진 것 같아요. 정신도 신체도 방금까지 멀쩡했는데 지금 어깨만 죽은 것 같답니다…. 늘어놓고 나니 시답잖은 소리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검은 렌즈는 색이 예쁘지가 않다. 나는 파란 눈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질색할 카츠에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와. 한 대 쥐어맞는 감각이 벌써부터….
"세상에. 진짜 질문해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그런 점이 궁금할 정도로 제가 좋아진 건가 아니면 제가 그렇게…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나…….."
"농담하라고 물은 거 아니야."
"알아요, 그냥, 음. … 좋아서."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머리가 좀 아프고요.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자꾸 질문이 생겨요. 대부분의 것은 갈무리할 수 있지만, 가끔 안 되는 게 몇 개 있을지도 몰라요. 웬만한 질문의 표적은 '소우야마 아키'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눈에 띄는 뭔가가 있으면 거기로 흥미가 쏠리거든요. 그러니 그냥 적당히 입을 막아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입 틀어막고 1분만 기다려주시면 얌전해질 거예요. 포기와 체념을 할 줄 아는 사회인이거든요…. … 듣고 나니 별거 아니죠? 중얼거리듯 덧붙인 내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 경쾌한 웃음소리가 미친 사람처럼 들릴지, 아니면 평소 아키가 짓던 웃음으로 들릴지. 그거는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몸이 뒤로 기울어진다. 기절과는 다른 형태의 각도였다.
"여기서 심해져 봤자 생각이 많아지는 것 밖에 없어요. 정말이에요. 별 거 아니죠?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감당할 수 있는 것. 그러니… 말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한 거예요. 울지 말아요. 아니, 아니다. 울려서 미안해요. 울려서…. …제가 죽을까 봐 걱정했어요?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릴까 봐? 이봐요, 카츠에 씨…. 저는 죽을 위기에 처하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해요. 에카와 다이시엔에게 문자 한 거 보면, 아시잖아요. 미치는 것도, 위험한 일도, 감당 가능한 내에서만 견뎌요. 그러니까 날 조금만 더 믿어줘요. 난 내가 한 약속 안 어겨요."
"……그리고 저, 카츠에 씨."
"말 나온 김에 말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냥 이렇게 질문해 줘요. 그만큼 내가 좋잖아요? 지적의 형태도 좋고, 비난의 형태도 괜찮아요. 그런 걸로 상처받을 나이는 지났거든. 그냥…, 음, 네. 이제라도 들어준다고 했으니까. 기다릴게요. 이것도 약속해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