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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새끼….

Queen  2022. 4. 13. 02:38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늘 간사하다. 행복해 마땅한 순간에 불행을 좇는다. 기뻐 마지않는 순간에 슬픔을 찾는다. 우울의 골짜기에 빠져드는 순간에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낸다. 붙잡고. 추락하고. 침몰하고. 죽어버린다. 그게 마음이다. 어째서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셨는지요. 신이 있다면 대답하시길. 악마가 있다면 그것을 부숴주시길. 천사가 있다면. 그래. 이 마음에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세이렌은 닫힌 문에 기대 주저앉았다. 쇠사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나는 숨을 쉬지 않았다. 철저하게 준비해놓은 거대한 연극이었다. 대단히 철저한 건 아니었고. 그냥. 조금. 어린아이들의 장난치곤 심한 정도? 하지만 사람 하나 내몰리게 하기엔 충분했겠지. 그렇게 죽은 사람을 알잖아, 우리. 

 

옥상을 오르던 날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무력감을 이해한다.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굳이 문을 걸어잠궜다. 손목을 묶은 걸로 충분하지 않아? 라고 묻는다면.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이유여서였다. 얼굴을 가린다. 이래선 그 작자들과 내가 다를 게 없구나.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유가 달랐다. 이건 정당한 복수였다. 사랑으로 시작한 친애, 우정, 감사와, 미안함. 약간의 죄책감. 그리고 약간의 양심. 그것을 배신한 건 그 자였다. 멀쩡하게 살아 숨 쉴 내 마음을 갈갈 찢어발긴 것은 그였으니, 그의 마음도 마땅히 찢어져야 했다. 이유 없는 폭력은 당연히 나쁘다지만. 그래, 정당하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정당할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 생각했다. 

 

몇 번이고 네 목을 조르고, 칼로 찌르는 상상을 했다. 손가락을 하나 하나 자를까. 아니면 갈비뼈를 하나하나 부러트릴까. 눈 하나를 내가 가질까? 아니면 똑같이 손톱을 들어낼까. 그렇게 하면. 네가 나만큼 고통스러워할까. 응, 울어줬으면 좋겠다. 내 최악에 네가 설 자리는 없지만. 네 최악에 내가 서 있을 수 있길 바라. 그러나 나는 신체적인 고통을 싫어했지. 잘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내 방식은 그렇게 추잡하고, 역겨운 행위가 아니었다. 조금 더 본질적인 것을 상처 입히면 쉬운 게 인간인데. 왜 그렇게 복잡한 길을 걸어간단 말인가? 하하. 재밌겠다. 응, 재밌겠네.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역시 간사하다. 복잡하고 쓸모없는 생명체다. 그냥 전부 죽어버리면 좋았을 텐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툭, 바닥으로 떨어지니. 나는 어쩐지 울음소리만을 선명하게 듣고 있었다. 왼 쪽 귀는 막혀 있을 텐데도. 보글보글 가라앉아 침몰한 내게, 타인의 감정이 닿을 수 없을 텐데도. 나는 고작 얇은 철문 너머에 있는 이의 표정을 쉽게 그린다. 씨발. 작은 욕이 샌다. 시발. 시발! 가짜 손톱을 박아 넣고, 천으로 둘둘 감 싸맸대도 아픈 건 아픈 것이다. 머리카락을 헝클이자, 천이 금세 시뻘게진다. 하루를 쉬어도 상처는 낫질 않는다. 원래 인생이 그렇다. 씨이발…. 이러니까 내가 호구구나. 응. 나 호구가 맞았구나. 복수 하나 제대로 못하는 인간 따위, 세상에 설 곳이 없구나. 이래서 내가 좆같게 살았구나…. 아주 옅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충동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솔직히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응,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평생 내 감정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거늘. 인생의 변수는 늘 나를 통제불가의 상태로 만들어놓곤 했다. 그렇게나 들끓는 살의로 허덕였으면서. 오지 않는 잠, 막힌 숨을 끌어안고 원망을 늘어트렸으면서. 이제 와서? 하하! 웃음이 샌다. 그러나 나는 울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쇠사슬이 바닥에 죄 떨어지고, 구두 소리가 조금 성급하게 울린다. 충동의 이유는 간단했다.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 무엇을 느끼고 받아들였는지 알 수 조차 없어. 알고 싶지 않아. 알 필요가 없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늄, 그날의 너에게는 이런 사람이 필요했겠지…. 

 

카임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 챈다. 그래 봤자 아픈 건 내 손가락의 끝이었다. 감각이 마비되는 기분에도 성난 기분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몇 배 큰 사람을 끌고 간다는 건 온몸의 근육이 칭얼거릴 일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를 이 좁디좁은 어둠 속에서 끌고 나왔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온 걸까? 십 년이 지나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씨발. 욕설이 샌다. 아는 욕이라곤 변변찮게, 이런 천박한 것들 뿐이었다. 숨이 턱턱 막혀서 몇 번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나 아직도 울고 있냐?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꺼져, 꺼져버려! 이 악문 소리가 바닥을 긁는다. 제 손으로 생각의 바다에 밀어넣어놓고 건져 올리는 꼴이 우습다. 하지만, 그래. 같이 침몰할 수는 없었으니까. 네 우울에 내가 빠져들기란 불가능이니까. 세이렌은 키르케를 원망했을까? 

 

나는 이제 그 답을 안다. 존나게 원망스럽지만 시발, 뒤지고 나면 다 소용없는 짓임을 깨닫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려나? 아님 말고. 내가 전설 속 생물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여튼 좆같아도 내가 감당해야 할 건 내가 감당하면 그만이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으니 몇 번 더 억울하다고 나가 뒈지진 않을 것이다.

시발. 화풀이 그만해야지. 성격 고치자. 

그래. 응. 복수 멈춰. 생각 끊어.

 

 

이러니까 내가 호구 취급을 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