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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Queen  2022. 4. 8. 12:36

그걸 알면서 좋다고 말하는 거야? 너도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나는 아픔을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어떤 아픔은 싫다지만, 어떤 아픔은 좋을 수 있다는 게…. (흠, 성벽이라는 건 상상 이상으로 대단하군. 실없는 소리를 덧붙이면서 제 코를 훌쩍였다. 눈물보다는, 그냥 추워서. 돌아가면 분명 코맹맹이 소리가 나겠구나, 라는 자신의 운명을 점쳐봤다.) 걱정은 애정이지. 다정이고. 자비임을 모르지 않아. 네가… 애정결핍 소리를 들을 만큼 그것에 목말랐다는 것도 이젠 알 것 같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해선 안 될 것들이 존재해. 걱정이 결국 그런 거야. 더 좋은 것들, 더 행복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고. 그런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게 오늘날의 세계인데. 걱정에 기뻐하는 건 너무. …메마른 사막이 단비를 원하는 것 같잖아. 걱정은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본능인데도. (이건 낭만적인 고백이라고 봐야 하나? 속삭임이 덧붙여진다. 생각보다 싫어하진 않았다.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긴 하였으나 그뿐. 잠깐의 공백 이후 그것도 나쁘지 않네, 라는 정도의 답을 내려놓고 말았다. 말투는 가볍지 않아, 스스로도 아차 싶었을 테지만.) 한 대 때릴 뻔했어. 조심해. (…) …사회적 타살도 나쁘진 않긴 하지. 흠. 상부에 건의해보도록 할게…. (뭘.)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렇게 아등바등 애써서 얻은 걸로 세상 모든 걸 다 가질 텐데. 사인 5장, 콘서트 두 번, CD 돌리기…. 못할 게 뭐야? 몇 번이고 해 줄 수 있어~ 그 정도는 눈감고도 해…. …윗 분들이 머리를 안 다쳐서 어려운 거지. 네 말대로 누가 선임들 대뇌질 좀 다치게 해 줬음… ………아니, 취소. 취소 취소. (듣는 이가 너인 걸 내가 까먹었구나. 이게 내 패착인가….) 

 

(서늘한 바람이 불면 나는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갑갑한 목구멍으로 찬 바람이 스며들면, 그제야 나는 계절을 자각하고 숨을 내쉴 수 있게 된다. 불변의 존재를 찾고 있으면서도, 나는 불변 앞에서 이렇게 막연한 존재가 된다. 얼음이 끼고, 배가 움직이지 못하면. 그때 쯔음 존재의 형태를 선명하게 그릴 수 있으련지. 물이 튀기지 않는 발장구를 치면 발목의 끈이 풀려 구두가 멀어진다. 구두를 신을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긴데, 벗는 건 이렇게 한 순간이다.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오른 푸른색 구두를 외면하며, 카임의 무릎에 발을 올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설프지 않은 행동이 없었다. 다만, 잡은 손만큼은 어설픈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래도 나는 가라앉는 게 좋더라. 

 

(바다에 가라앉을 필요가 없다면 침몰은 어찌하여 존재하고, 심해의 윤곽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는가. 모든 말을 이해했고, 모든 말을 공감하겠지만. 도통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떠오를 수 있는 것은 몇몇의 사람들뿐이고, 휩쓸림에 휘청거리는 것도 결국 몇몇의 사람들 아니었던가.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늘 익사로 귀결된다. 통계자료가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내 세계가 거대한 심해였기 때문에…. 이 모든 건 환상이었는지. 말 한마디에 금이 간다. 하여, 나는 실소를 터트리며 남은 손 역시 맞잡았다. 우습나? 응, 음, 조금은. 아무리 떠올라도 한계가 있는 몸으로, 목을 간질이는 파도에 눈을 굴린다. 이렇게 깊게 들어온 건 처음인데. 공포보다는 안도가 몰려온다. 시시하고 한심한 감각이었다.)  

 

본디 생각을 멈추지 않고, 조언을 끝없이 구하는 자는. 상상 이상의 묘책을 떠올리기 마련인지라. 최악을 극복하는 건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이라잖아. 물론, 그런 것 치고 조금 치사하게…. 마녀의 도움을 빌리긴 했지만. 그것도 그의 현명함이겠지. (네게 그 이야기는 웃긴 일화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결국 그 상황에서 승리한 것은 인간이고, 마녀의 꾀가 아니던가. 이어진 마지막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다. 입술에 바닷물이 닿아, 짭짤함에 갈증이 일었다. 사람을 여럿 죽이지만 않았다면, 마음 편히 동정했을 텐데.) 그러네. 정말 다 있나 봐. 노래라도 부를까? 누구 한 명이 홀려, 여기까지 걸어오게. 재미는 있을 거야. 그 사람을 말려줄 마녀가, 그리고 괴물까지도 내 손에 있는데. 어떤 인간이 이 파도를 거절하겠어. 그렇지?

 

 

춥다.

하늘 더럽게 예쁘고. 파도는 시리도록 깨끗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