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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에게.

Queen  2022. 4. 1. 21:00

말이 이상하네. 잘 이해가 안 돼.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널 걱정한 적 없어. 나쁜 사람이면 어떻고, 좋은 사람이면 어때. 그런 논리로 사람을 평가하고, 사람을 사랑해본 적 없어. 내가 널 걱정하는 이유는 그냥 너여서 야.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묻어두지 말아. 내 다정은 온전히 내가 사랑한 것들을 위해 존재해. 나는 너희와 함께 가라앉고자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이상하다, 왜 홀로 가라앉았을까. 네 손을 잡아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눈물은 말라선 안 돼. 감정을 놓아선 안 돼. 상처받는 걸 두려워할지언정, 스스로를 완벽히 외면하면 안 돼. 알잖아. (이걸 내가 말해도 되나? 잠깐의 고민이 이어진다.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고, 뺨에 얹어지는 손길은 가벼웠다. 다정보다는 의무적인 손길에 안도와 애석함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은 늘 마음과, 이성을 고려하여 말하기 때문에. 내 최선이 맞닿길 바랄 뿐이었다.) 책임도 그래. 함께 나눠 들면 가벼워지는 것들인데. 왜 자꾸 혼자 끌어안아. 규칙이잖아? 최소 셋이서 함께 다녀야 한다는 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서, 책임을 공유하기 위해서. 고려해줘. 내가 짊어지지 못하는 이상, 나는 늘 네게 미안할 수밖에 없어.

 

과거를 어떻게 잊니. 내일을 기대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오늘 닥친 불행을 외면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제의 일은 영원히 마음에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영영 사라질 수는 없어. 잊지 못해. 나는 어제의 꿈을 꿔. 떠오른 추억을 침몰시킬 수 없어서. 사라지질 않아서. 마음이 아파서 그래. 사람은 해일처럼 밀려 들어오는 상처를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여. 각오했기 때문이야. 언젠가 이렇게 상처받은 날이 올 줄 알았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이런 건 아니야, 서리야. 너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런 건 내려두자. 상처가 생겨나는데, 누군가를 위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손가락 끝에 난 상처를 인식한 순간 나는 우울해질 거야. 그러니 이 선이 지워지길 기도할게, 조금 더 힘낼게. 정 나를 멈추려 하거든, 그냥 내 천성을 원망해. 

 

네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만큼, 나도 이런 상황이 익숙해. …너와 결이 다를 수도 있겠지. 나는 실전에 능한 사람이 아니니까. 하지만 너무 많이 생각했어. 몇 만 번째 반복되는 생각 속에서, 내가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려나. (옅은 웃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건 없어. 최악을 덮을 수 있는 차악만이 존재할 뿐이지. 내 다정을 망쳐도 좋아. 어차피 바란다고 아낄 수 있는 다정이 아니니까. 그걸로 네가 날 마주할 계기가 된다면. 이 노력과 우울의 생각이 기어코 빛을 본다면. 난 그를 통해 행복해지도록 애써볼게.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네, 나, 고집 쟁이니까. 들켜버렸구나. 제어 수단이 잘 먹히길 기도할 수밖에. 이따금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충동적이거든. 그래도, 친구로 여겨주는구나. 기뻐서 울어버릴 것 같아…. (이미 울지 않았나? 토닥이는 손길에 고개만 폭 서리에게 돌아간다) 상처받는 일에 지쳤다는 건 이상해. 아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야. 허세와 다름없어. 누구나 피를 토하면서 마음을 지키고 싶어 해. 마음은 끝없이 아파하니까.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고쳐야 해. 내가 과하게 내 마음을 지키는 것도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가 네 마음을 과하게 방치하는 것도 좋다고 할 수 없어. 마음이 무너지면, 더 이상 가라앉지도 못해. 망가져서 난파당할 뿐이야. 

 

……정말 전과 다르게 무뚝뚝하다니까. 그래도 그런 너조차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