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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나의 심해야.

Queen  2022. 3. 27. 19:52

 

 

내가 두려워한 것은 부모의 존재가 아니었다. 내 기억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 따위는 없다. 나의 할머니는 훌륭한 보호자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일에 죄책감을 가지면 나는 죽어버릴 것이다. 이기지 못할 감정을 스스로 빚어내는 취미란 없다. 스승과의 작별이 두려운가? 아니. 나는 드넓은 바다의 후손을 안다. 그 자와의 작별에서도 이러한 공포심을 맛본 적이 없다. -조금의 무기력은 느꼈지만, 그것이 한계임을 익히 예상한 바. 상처 입을 이유, 상처받을 필요,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왜 거울을 깨트리며 두려움에 휘청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예상하지 못한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 날의 일을 조금이라도 예측했다면, 나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렇구나. 충동에 휘말릴 필요가 없어 담백하게 사실을 이해하고 끝을 냈을 것이다.

 

하여 나는 비를 맞았다. 정처없이 걸었다. 이 순간에도 나는 생각을 멈춰 선 안 됐다. 최악을, 불행을 예상해야만 했다. 그래야 이 연약한 마음이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방어구를 겹겹 껴입고, 살아남기 위해 물장구를 칠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이곳이 나의 심해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울었어. 숨을 쉬기 위해서. 물거품에 녹아있는 호흡 한 조각을 탐하기 위해서. 너희들은 이런 나를 동정하겠지만. 나는 나를 동정해본 적이 없어. 늘 기뻤어.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어서. 너희들은 내가 울지 않길 바랐겠지만. 나는 울음이 늘 기꺼웠어. 웃음은 마음의 그릇이라고들 하잖아. 나는 아니야. 나는 울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야. 그게 아니면 진즉 침몰해버렸겠지. 난파당한 구조선처럼, 그대로 죽어버렸겠지. 

 

그러니 나는 오늘로 이런 미련한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 어떤 일에도 충격받지 않게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제는 함께 합을 주고받으며 대련할 사람도, 맞지 않는 사상에 부딪혀줄 사람도, 함께 악몽을 꿔줄 사람도 없지만. -그것은 비단 너희들의 탓만이 아니겠지만. 나는 한껏 더 우울해지기로 하였다. 그것이 타인을 구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라면. 그리고 나를 보호할 유일한 수단이라면. 그리하여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면. 나는 몇 번이고 침몰해버릴 것이었다. 이 곳은 나의 심해야.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리고 당신의 침몰을 받아낼 수 있는. 나의, 안식처. 나는 어찌하여 히어로를 꿈꿨는가. 어찌하여 노래를 하는가? 나의 모든 숨은 침몰이오, 나의 걸음은 보호였으니. 사랑받은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줄 뿐이다. 은혜를 갚자. 나를 사랑한 모든 세상에게. 내가 사랑한 모든 세상에게. 그대들에게 침몰을 안겨줄게. 그 곳에서 호흡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게 해 줄게. 그것으로 삶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나, 우울의 늪에 빠져 죽어도 행복할 거야. 

 

그러니 어머니, 당신을 이해할게요. 당신의 원대한 꿈을 앞두고 세상의 빛을 본 제가 얼마나 미우셨겠어요. 제가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하셨음을, 저는 깊은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원망스럽지는 않아요. 우울하지도 않고요.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요. 아, 울고 있지 않느냐고요. 눈물은, 네에, 안 나는 쪽이 더 끔찍하니까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울보인 걸요. 울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이라서요. 하늘에서는 행복하세요. 약간의 자비, 동정, 그리고 사랑과 이해를 한가득 담아놓은 목소리. 하늘까지 닿도록 높게 올려 보내겠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노래가 남겠지.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그 말이 기억나,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당신을 향한 추모는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의 시간이 전부겠지요. 하지만 제가 당신을 이해하듯, 당신도 저를 이해해주길. 당신이 사랑한 노래.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나. 나는 사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멈추지 않으렵니다. 오랫동안 당신이 기억되면 나는 내내 우울한 것이 기꺼울 테니. 보답은 생각 마세요. 당신이 가르친 모든 호흡이 내게는 갚아야 할 은혜입니다. 당신, 하늘에서 미소 한 조각을 끌어안고 답해주길. 

 

 

 

 

노래해, 세이렌. 

당신에게 상냥한 침몰을 돌려줄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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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키스의 제자, 세이렌이 주관한 포르키스의 추모 무대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특이한 점은, 극장을 대관하지 않고, 지난 번 테러로 완전히 무너진 OO 대극장에서 무대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관중은 동원되지 않았으나, 인터넷 생중계로 해당 무대를 송출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녀를 추모할 수 있게 되었다….

 

… 당시 평론가들은 포르키스의 제자, 세이렌에 관하여. 천 년에 한 번 나올만한 목소리라 극찬을 하였다. 해당 무대가 끝나고 세이렌은 추모 무대가 데뷔 무대인 것은 아쉬우나, 포르키스 님의 뜻을 따라 계속해서 노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이어, 다음 날 히어로로 첫 출동을 하는 것이 목격되어, 사람들은 앞으로 그녀의 행보에 대해 기대를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