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알고는 있어. 이게 마냥 나쁜 생각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그렇지, 사람은 누구나 긍정적인 삶을 꿈꿔. 비관적인 걸 두려워해. 누구나 불행 앞에서는 겁쟁이가 되니까. 그래서 그냥, 조금, 걱정했을 뿐이야. 그 걱정마저도 네 덕분에 날아가버렸고. 그렇게 고마운 널 팔아 빠져나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애당초 그런 말을 내가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단단해진 볼이 버티는가 싶더니, 곧 바람이 훅하고 빠져버린다. 볼이 다시 꾸욱 눌려버렸다. 사람은, 백 년을 함께 해도 알 수 없는 것이 태반이란다. 너와 나는 고작해야 3년이지. 그래서,) 시야 네가 왜 그런 웃음을 짓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히어로가 되지 않겠다는 네 의견에 대해, 정말 수많은 이유를 들었고, 일관적인 대답을 들었는데도 어려워. 이상하지?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어차피 말이잖아. 거절해도 괜찮아. 하지만 정말로, 긍정해줄 거라면. 나, 힘낼게. 네가 히어로가 되어도 괴롭지 않도록, 이상적인 히어로가 될 수 있도록. 올바름이 무엇인지 매일 고민할게. 히어로답게.
아마 경험과 천성이라고 생각해. 어렸을 적의 추억은 자라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들 하잖아. 나는 할머니랑만 살았거든. 할머니는 좋은 보호자시고, 상냥한 사람이지만, 부모는 아니잖아. 물론, 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있진 않아. 그립다거나, 보고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다만, 그런 기억이 있으니 내게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음, 그래. 좋은 인간관계를 막연히 어려워한 게 아닐까. 잘 상상이 안 되거든. (그런 의미로, 너희를 만난 건 내 천운이나 다름없어. 속삭임이 느렸다.) 만약 정당한 이유가 없이 사람이 싫어진다면, 그건 스스로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그랬어. 겪어보고,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극복해나가면, 우리는 한참 남아있을 성숙을 빨리 거머쥘 수 있을 거야. 그건 좋은 일일까? 아직 모르겠지만.
시야, 네가 확신하는 이유는 난 몰라. 네 불안의 근원, 아무리 말해줘도 나는 너만큼 잘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널 위로하려면 막연히 좋은 이야기를 내뱉어야 하고, 조언을 하려면 막연히 나쁜 이야기를 해야 겠지. 그러나 나는 그 중심을 잡지 못해. 위로와 조언, 한 가지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미성숙해서 그래, 이해해 줘. 그러니까 내 선택은 이거야. 나는 지키기 위해 플레이트에 들어왔어.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키고, 그 사람이 사랑한 흔적들을 세상에 남기고 싶어. 언젠가 떠나버릴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그 기록들이 오랫동안 남아 사랑받는다면. 나는 기쁠 거야. 울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너는 늘 내 지긋지긋한 천성을 이해해주었지. 겁 많고 울보에 불과한 나와 머리를 맞대고 늘 함께 생각해준 네 덕분에, 나는 달이 뜨지 않는 밤을 조금 좋아하게 됐어. 그러니 그 보답을 하고 싶을 뿐이고, 널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러니까.
응, 허락할게.
내가 네 손을 잡을 수 있게 해줘.
…확실히 절교로 이어지면 낭패긴 하겠다. 그래도, 음, 그만큼 친해지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라는 거잖아? 그런 계략을 생각해낼 정도면. 원래 진심은 늘 통하는 법이래. 아마 계략을 쓰기 전에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계속 웃네…. 그러나 삐죽이진 않았다. 웃는 걸 보니 좋기도 하고, 저런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애가 설마 진짜 그럴까 싶기도 하고. -이 부분은 내가 너무 시야를 좋게 생각하는 건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자세를 낮추고, 속삭이는 것에 눈을 깜빡인다. 물론, 실존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은 하나. 그게 시야의 일이라고? 놀람을 누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으나, 잘 되었는 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잠깐의 공백 이후 세이렌은 시야의 팔을 느슨하게 잡았다.) 그렇구나. (잠깐의 달싹임) 힘들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계가 있고, 내가 넘어도 되는 선 역시 정해져 있다. 갑작스럽게 네가 무서워지는 일은 없었고, 그렇다고 내가 말을 얹을 처지도 아니었으니. 그것을 자각한 네게, 그것에 뒤쫓긴 네게, 심심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긍정적이야? 부러 가볍게 묻는다. 묻지 말 걸 그랬나. 목소리가 끊기면 바로 후회가 일어난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러면 기대할게. 약속, 안 잊을 거야.
…저엉말? 그래! 그러면 내가 어, 여러 가지 찾아볼게. 나도, 엄청 로망이 많으니까. 인기 많은 카페도 가보고, 게임도 해보고…. 분명 즐거울 거야. 아, 다른 애들과 함께 가는 것도 재밌겠다. 둘이 갔다가, 다른 애들도 부르자. 복작복작한 맛도 좋을 거야. 그렇지?
……그런… 건가? 하지만 말야. 상견례는. 서로를 사랑하는 걸 바탕으로 시작하는 거라고? 부모님이 '안 돼.'라고 말한다 하여 '넵!' 하고 헤어지는 경우는 드, 드물게 있긴 한가…. 아무튼, 별로 없다고?! 하지만 친구는! 친구는 아닐 수가 있잖아! (얘 뭔 드라마 보냐? 진지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해준다면… 노, 노력은 해볼게. 아니, 노력할게. 모두가 처음이니까. 그래도 울지도 않고, 열심히 힘낼게…. (손을 따라 시선이 흔들리고, 다시 눈동자만 힐끔힐끔 시야에게 향한다.) … 아니! 부담스럽다고 해서 도망치면 두 번의 기회는 안 와. 이 기회 놓치면, 우리 할머니는 내 친구 두 번 다시 못 봐! 그냥, 그냥. …얼떨떨해. 현실 같지가 않아. 하지만 분명 기뻐질 거야. 오늘 밤은 잠이 조금 늦게 오겠네. 들떠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