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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Queen  2022. 1. 10. 01:06

 

 

 

나, 문성 리현은 다음과 같이 재산을 정리하고자 유서를 미리 남기니, 이 글을 읽고 문성의 장로들은 충실히 행할 것을 명령한다. 죽는 순간까지 나는 문성의 소가주로 존재하니, 이 명을 어기는 자, 하늘이 두렵지도 않다 이해할 것이다.

 

예禮와 심心을 다해 따르라.

 

 

문성 내의 재산은 모두 가주, 문성 지후의 유일 딸인 문성 이랑에게 양도한다. 가문 재산이기 때문에 소가주가 손댈 수 없는 바,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주의 도장을 함께 끼워 적는다. 가주께서도 허락한 일, 토 다는 자 없길 바란다. 문성이랑은 문성의 모든 재산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그의 선택에 반박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만이 나, 문성의 소가주 리현과 가주 지후의 뜻이다.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도박장에 관련하여 모든 지분을 무명無名에게 일시적으로 맡긴다. 훗날 내가 지명한 이가 찾아와, 일러두었던 것을 챙기거든 그 자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한다. 도박장의 모든 부와 권력은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으니. 이름 잃어 묻힌 자들만을 위한 것이다. 주인이 없는 시절 발생하는 모든 기금은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남쪽 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아들의 쉼터의 기금으로 사용한다. 이 역시 반박하는 자 있다면 무명은 소가주의 승인 아래, 그 자의 입을 찢어버려도 상관하지 않는다. 

 

 

고아들의 쉼터, 일명 환아휴동𢓃兒休勭의 관리는 전부 내 아비, 지현우에게 일임한다. 문성의 이름을 가진 자, 그리고 문성의 뜻을 따르는 자. 죽어서도 그곳에 들어설 수 없으며, 감히 건드려서도 아니 된다. 만일 해당 명을 거역하고 그들을 위한 쉼터를 건드는 자, 손수 이름 거둔 무명無名의 손에 스러질 것을 당부한다. 그곳은 길 잃은 아이, 삶을 다한 아이, 부모를 잃은 아이와, 집을 잃은 아이들, 그리고 살아갈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곳이다. 추악한 자는 발조차 들이지 말라 일러라. 설령 속내 검은 괴물이 그곳을 침범하려 들거든, 나의 이름 아래 그를 죽여라.

 

 

나에 대한 장례는 막지 않는다. 그러나 문성세가에서 여는 장례만큼은 거절하겠다. 그들은 나를 감히 추모할 자격도, 작별할 자격도 없다. 문성 지후에게 투여하는 약은 줄이지 말고, 그의 상태가 변화할 것 같으면 일전에 일러준 대로 행동하라. 그가 내 눈을 앗아갔으니, 나는 그에게서 내 눈에 상응하는 가치를 돌려받았다. 그러니 그에 대한 처우는 그 누구도 간섭하지 말아라. 설령, 누군가 그를 죽이러 오거든. 그것마저 내 뜻이라 여기고 문을 열도록 하라.

 

 

무덤은 만들지 말아라. 나는 부끄러움 많은 인생을 살았다. 지키고 내어준 기회와 약속보다, 지키지 못한 약속, 내어주지 못한 기회가 더 많은 사람이다. 누군가는 그것조차 다정이라 이르지만, 나는 그것이 낯부끄러워 평생 스스로를 하잘 것 없노라 지칭했다. 그런 자에게 무덤은 과분하다. 비석조차 아니 세우고, 전부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길 바란다. 혹여, 내 부모가 그것이 너무 슬퍼 반대하거든. 그들을 위해 내 지우산 하나만을 동백나무 밑에 꽂아주길 바란다. 나는 겨울에 하나하나 떨어지는 꽃이 아니다. 떨어지려거든 목 째로 떨어질 동백이다. 

 

 

나는 그대들을 사랑한다.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그 어떤 악행도 그대들이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죄와 업보, 내가 차마 다 가져갈 수는 없다지만. 그대들의 행복만을 빈다. 살아라. 내일은 찬란하고 오늘은 아름답다. 나는 그대들에게 다정을 배웠고, 사랑을 받았으니. 그것을 그대로 돌려주고자 할 뿐이다. 나조차 가진 것을 끝끝내 받지 못한 자, 그대는 나에게 사랑 받았으니 너무 외로워 말라. 그것만이 내 삶의 이유고, 그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가치다. 

 

 

밤이 가장 길고, 삿된 것들이 날 뛰는 동짓날. 나를 추모하려거든, 그날에만 하라. 죽은 이를 오래 끌어안는 것은 좋지 않으며, 나의 죽음이 남는 자들에게 짐이 되고 싶은 맘 일절 없다. 가장 긴 밤에 나는 새로이 태어났고, 새 이름을 받았으며, 다정을 습득했다. 그러니 그날만이 나를 추모할 수 있는 날이다. 오래 기억하지 말라. 새로운 사람, 그리고 새로운 삶을 만나야 하는 것은 남겨진 자들이다. 죽어 바스러진 이는 다음이 있을지언정, 내일이 없으니 말이다. 

 

 

마지막.

이 유서를 읽는 자, 모두를 이행할 때 쯔음에 내 부모에게 가 이 글을 전해주어라.

평생에 걸쳐 어미라 부를 수 없었고, 아비라 부르기 힘들었던 나의 부모에게. 그대들이 나를 구한 날, 그대들은 이롭고 어질게 살라며 리현利賢이라 이름 붙여주셨음을 압니다. 이 유서, 그 손에 닿을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님, 아버님. 저 리현利賢, 이름대로 살다 가고자 합니다. 그대들이 눈물과 자비, 다정으로 키운 딸, 이렇게 먼저 스러집니다. 너무 많이 울지 마시고, 너무 오래 괴로워 마소서. 죽음은 언제나 남겨진 자들의 짐이지요.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웃으면서 떠나가렵니다. 그러니 이 짐, 오래 끌어안지 마세요. 저는 그대들의 다정으로 태어난 존재이니, 그대들이 내내 행복하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못난 불효녀, 이것으로 인사를 마치려 합니다. 

 

사랑합니다. 

 

 

 


 

 

비수 아래 놓인 비단보들. 

당신들이 자비와 다정으로 적어준 유서들.

그리고, 문성 리현이 남긴 마지막 글.

 

그녀를 추모하는 자, 동짓날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