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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펜스 저택에는 마녀가 산다 (3)

Queen  2021. 11. 1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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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펜스 저택에는 마녀가 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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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들었다 완결 내보자고 

 

 

 

 

#. 

"…왜 그렇게 봐요?"

"아니, 검정 머리카락에는 무슨 색깔 보석이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서."

"갑자기요?"

"역시 푸른색?"

"아니아니, 보석이라는 점에서 아웃입니다만."

"푸른색 좋네. 그걸로 하자."

"내 말 안 들려요?"

"며칠 뒤에 받게 될 거야"

"아, 제발!"

 

 

#. 

에비타가 수도로 떠났다. 당연히 나도 동행했다. 세르펜스 후작의 이름으로 소유된 타운하우스는 역시나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귀족들은 다 이런 집을 갖고 사는 걸까? 대단하다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에비타는 시골의 꼬마 아이처럼 꺅꺅 떠드는 나를 흘겨보고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시골 출신이 맞다.-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타운하우스를 벗어났다. 뭐가 그리 급한지, 제 짐도 다 옮기지 않고 말이다. 나는 하루 종일 방 안의 푹신한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그가 올 시간에 맞춰 약을 조합했다. 최근 발작이 줄어드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경계를 풀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저녁, 해가 떨어지고 나서야 타운하우스로 돌아온 에비타는 뭔가의 꿍꿍이를 꾸미는 표정이었다.

 

 

#.

"제가 뭐 도울 건 없나요?"

"네, 괜찮습니다. 그보다 레아 님, 잠시 이 쪽으로…."

"으, 으어, 어?"

"마담, 이 쪽이 레아 님이십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레이디 레아. 흠, 잠시 팔 좀 들어보겠어요? 치수를 재야 해서."

"으, 에? 아?"

"선호하는 디자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맞다면 디자인은 세르펜스 후작에게 물어보도록 할게요."

"어? 에?"

"네네~ 알겠어요. 얘들아! 레아 아가씨 좀 모셔라!"

 

 

#.

세르펜스 저택으로 돌아와서 하는 일이라곤, 분주해진 사용인들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이따금 유리조각이나, 칼 따위에 베인 사용인들의 치료를 돕는 일 외에는 정말 평소와 똑같았으니 말이다. 에비타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며, '대체 무슨 꿍꿍이예요!?' 따위를 소리 높여 물었지만. 에비타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홍차나 홀짝일 뿐이었다. 얄미워 죽겠네! 내가 입을 댓 발 내밀고 투덜거림을 중얼거리자, 에비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보석함을 꺼내 여러 가지 보석을 꺼내 내게 대보기도 했다. 이게 어울리려나? 아니면 이거? 중얼거림은 심오했지만, 내 눈에는 그게 그거라서 어색하게 웃는 것이 최선이었다. "에비타, 진짜 속셈이 뭐예요?" 그는 고민 끝에 보석 하나를 고르더니, 집사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뒤에 나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 "너 춤은 출 줄 아니?" 안타깝게도, 나는 몸치인 편이었다. 

 

 

#. 

파티의 속 뜻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파티의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 이제 손님만 맞이하면 될 때 즈음. 세르펜스 후작에게는 그런 방식이 있다지. 소문이 떠돌면 공포를 이용하는 형태. 왜 그의 창고에는 약뿐만이 아니라, 독이 가득 쌓여있을까? 레아는 그 이유를 오늘로써 깨달았다. 나는 에비타의 방 문을 열어재꼈지만, 그는 평소의 그 표정 그대로 독초를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집사에게 고갯짓으로 몇 가지 신호를 보낸 뒤, 홍차를 홀짝이던 그는 나를 돌아보며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덮으려는 걸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 
"왜? 네 소문의 주동자들을, 다 죽여버리면 될 일이잖아."

"……."

"건방지게 입을 놀리던 애들은 알아서 입 다물고 설설 길 텐데." 

"……."

"죽는 걸 보기 싫으면, 네 앞에서는 안 죽일게. 속 시원하라고 좀 보여주고 싶긴 하지만…."

"… 그래도 안 돼요."

 

 

#.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붙잡은 에비타의 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긴장이었을까? 그런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테이블이 흔들려 찻잔은 덜컥이고, 나는 그를 곁눈질로 올려다봤다. 내 시야는 두 갈래로, 그의 두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였지만. 그의 시야에서는 내 한쪽 눈만 보일 것이다. 손가락을 꼼질거리고, 나는 입술을 몇 번이고 달싹였다. 에비타는 내게 친절했다. 나는 그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별 말 아닌 것 같이 툭툭 내뱉어도, 나는 그 말에 숨어있는 다정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사랑받아왔다. 그래서 웃었다. 어색하게 보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에비타." 비굴하다면 비굴한 목소리였지만, 그보다는 맹랑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리에 앉아야 할지, 도망쳐야 할 지 고민하던 찰나. 그는 입을 열었다. "그래."

 

 

#. 

"그렇지만 드레스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의 웃음은 생각 이상으로 흔쾌했다. 헛웃음에 가까운 크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 

에비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파티와 맞지 않는 인간이었다. 시시했으니 말이다. 생전 처음 입어본 드레스는 약간의 답답함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위해서 필요 이상의 노출이나, 코르셋 따위를 추가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처음 느껴보는 실크의 감촉, 치렁치렁할 정도로 많은 레이스 따위는 내게 어색함을 주기엔 충분했다. 귀족 여성들은 이 드레스에 코르셋과, 보석과, 꽃이나 향수 따위의 기타 등등을 치렁치렁 매단단 말인가? 오, 세상에, 맙소사. 그들은 사교계란 전쟁터를 누비는 기사가 맞을 것이다. 나는 파란색 드레스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다, 괜스레 한 바퀴를 돌아보기도 했다. 천사께서는 하늘하늘한 비단옷을 입고 내려온다던데, 나는 지금 천사의 옷을 훔쳐 입은 걸지도 모르겠다….

 

 

#. 

"에비타, 전 이런 파티에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어서……."

"괜찮아. 그냥 웃어. 욕 하는 애들이 걱정되면 그냥 얼굴만 기억해놓고 나중에 나한테 알려줘.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실수해서 에비타에게 피해가 가면 어떡해요?"

"누가 내게 피해를 끼친다고? 넌 그냥 웃기만 해. 아니지, 웃지도 마. 힘들면 그냥 표정 팍 찌푸리고 있어."

그게 되겠냐고요. 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불만을 꾹 참고, 토라진 표정으로 에비타를 노려보았다.

 

 

#.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정확하게는 세르펜스 후작에게 건넨 인사였다. 그의 파트너는 아니지만, 그의 옆자리를 파티 내내 차지하고 있는 내가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이며 화답했다. 그는 오만상이 되어 돌아갔다. "방금 인사한 쟤, 우리 엄청 싫어하나 본데?" 장난스러운 어조로 와인잔을 돌리는 에비타를 돌아보니, 돌연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제법 말갛게 물든 웃음이었다. 에비타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싫은 걸 거예요. 그 말이 자꾸만 목구멍까지 차올라, 나는 아주아주 많이 웃어야만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에게 폐를 끼친 것 같은 이 기분에 몰락해버릴 것 같았다. 

 

 

#.

"야. 뛰어내리자."

"미쳤어요?"

 

 

#.

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경험을 겪어본 적이 없다. 정말, 맹세코! 계단도 안전에 유의하여 한 칸, 한 칸 오르는 인간이었단 말이다! 2층 발코니 난간에 서서 떨어지는 경험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무진장 무서웠으니까! 그러나 에비타는 그런 내가 웃기는지, 아니면 뭐가 웃긴 지 감도 못 잡을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받아 들었다. 용기를 낸 건 당신 때문이긴 한데요. 당신이 그렇게 웃으면 제가 뭐가 되냐고요. 나는 역시나, 불만을 꾹 삼키며 토라진 표정으로 그의 품에서 내려왔다. "저 많이 무거웠어요?" "무거웠겠냐?" 당연히 무거웠을 것 같아 걱정되어 물어본 건데. 대답 한 번 그다웠다. 나는 주변을 느리게 둘러보면서, 엉킨 머리카락을 정리하고자 했다. 

 

 

#. 

장갑이 새빨개졌다.

 

 

#. 

파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요령을 조금도 몰랐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집사를 큰 소리로 부르니. 자연스레 모든 이들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는 것 아니겠는가? 도리어 당황한 것은 집사였다. 세르펜스 저택에서 의탁해 지낸 것도 벌써 1년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런 순간 조용히 굴 것을 어느 정도 눈치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맹세코, 고의적으로 큰 소리를 낸 것은 아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이고 싶었다.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고, 숨을 쉬기가 버거워 보였다. 그러나 나 혼자 옮길 수는 없었고, 약초를 짓이기는 것도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치를 취하는 동안 누군가 도와줘야 했단 말이다. 나는 도움을 간절히 요청했고, 집사는 바로 에비타가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파티장에 덩그러니 남은 나는 그제야 등골을 싸늘하게 만드는 시선들을 마주했다. 그것이 내 첫 번째 실책이었다.

 

 

#. 

"저런 것도 주치의라 들이다니. 세르펜스 후작께서는, 인복이 참 나쁘군요."

"내 그래서 시골 출신의 의사들은 고용하지 않는 것 아니겠소?"

"세르펜스의 마녀라더니, 제 주인을 죽이려 작정을 하였나…."

 

 

#. 

손님들은 무사히 돌아갔다. 에비타의 숨도 이제는 안정되었다. 나는 차게 식은 손을 몇 번이고 매만지면서, 침대 맡을 서성거렸다. 에비타가 깰지도 모른다는 집사의 충고가 아니었다면, 나는 동이 틀 때까지. 아니, 에비타가 눈을 뜰 때까지 우두커니 서있었을지도 모른다. 손톱은 너무 많이 깨물어 부러졌고, 약초로 손 끝은 노랗게 물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에비타의 침실까지 찾아온 암살자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

"레아 님, 어떤 실수를 하셨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네." 

"후작님이 당신을 고용한 건, 이 일이 외부에 새어나가지 않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헌데 수도 귀족 전부가 알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준비는 단단히 하셔야 할 듯싶습니다."

"…죄송, 해요."

"그 말은 후작님께 하십시오."

 

 

#.

나는 옷자락에 튄 핏자국의 형태를 기억한다. 눈 감고도, 그것을 그릴 정도로 선명하게. 그러나 그 핏자국이 어제 찾아온 암살자의 피였는지, 아니면 내 주인의 피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나는 뜬 눈으로 사흘의 밤을 지새우고, 에비타의 방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약초를 배합하는 법은 종이에 전부 적어뒀다. 그다지 예쁜 글씨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읽기에 부끄러움은 없으리라. 나는 집사를 찾아가 사람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약초를 잘 다룰 것, 비밀을 잘 지킬 것, 상류사회의 흐름을 잘 아는 사람일 것. 마지막으로, 티타임을 좋아하는 편일 것….

 

 

#. 

"도망친대, 그 마녀."

"어쩌다가? 후작이 꽤 예뻐했는데."

"아니, 나라도 도망치겠다. 후작이 깨어나면 당연히 죽을 텐데, 누가 그 자리를 버티고 서 있겠어? 덕분에 수도에 소문 쫙 났잖아. 후작이 그걸 참 좋아라 하겠다."

"하긴. 근데 미안함도 없나? 이렇게 빠르게 도망치게."

"마녀 속내를 어떻게 알아."

"그건 그래."

 

 

#. 

나는.

맹세코.

그를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 

세르펜스 저택으로 찾아오는 암살자의 수가 작년에 비해 월등히 늘어났다. 필시 내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암살자를 저지할 만큼의 검술도, 그렇다고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의학도 모르는지라. 난 그저 검은 숲에 기생해온 평범한 약초꾼, 평범한 산파, 평범한… 겁쟁이 었기 때문에. 그의 옆에 있는다 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를 위해 약을 만들 수도 있겠지. 그의 손을 잡고 기도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끝이었다. 나는 존재 가치를 잃은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멍청한 도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세르펜스 저택으로 향할 때 챙겼던 낡은 옷들을 무자비하게 가방으로 쑤셔 넣었다. 눈물이 터져, 앞이 흐린 탓에 정리는 하나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믿을만한 사람에게 내 일을 맡기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가 받을 배신감이나 분노를 생각하자면, 그의 손에 죽는 것이 옳으나. 나는 피투성이 손에 피를 덧칠하고 싶지 않았다.

 

 

#.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나를 알아서 끝낼 수 있어요.

그 말을 덧붙이지 않음은 그대에게 죄악감을 내어주기 싫어서임을 알아주세요….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 

검은 숲으로 되돌아왔다. 새파란 비단이라거나, 살면서 처음 맛 본 디저트들의 단 맛은 전부 꿈과 같았다. 내게 남은 것은 신발에 묻어 지워지지 않을 핏자국, 샛노랗게 물든 손가락 끝과 창백하게 질린 피부 따위였다. 그러나 나는 나를 알아서 끝낼 수가 없었다. 몇 번이고 죄책감에 밤 잠을 설쳤지만, 결국 죽을 용기가 없어 숲 안 쪽으로 도망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에비타는 지금 쯤 깨어났을 것이다. 꾸준히 약을 먹였다면, 기력도 어느 정도 회복했겠지. 

 

 

#. 

내 후임으로 들어온 사람은, 집사가 엄선한 사람이었다. 내 마음에도 쏙 드는 사람이었고. 수도 외곽의 의사였고, 약초에 저명했으며, 입이 아주 무거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원래 복용하던 약과, 내가 새롭게 처방한 약의 배합법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는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그 배합법을 완벽하게 배울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저택을 떠나기 전, 그에게 흐린 미소로 물었다. "디저트, 좋아하시나요?" "없어서 못 먹죠." 나는 그를 신뢰한다. 에비타의 마음에도 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검은 숲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숲이었다. 그래서 온갖 꽃과 나무, 풀 따위가 그림자로 인해 새카맣게 보이곤 했다. 나는 그곳에 살면, 시간 개념을 자주 잊곤 한다. 흔들의자에 앉아 몇 번이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자,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내가 조금 더 현명했으면 그의 옆에 있을 수 있었을까? 재능이 더 넘쳤더라면. 검을 다룰 수 있거나, 활을 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나를 원망할까? 아주 많이 미워할까? 그의 미소가, 더 없는 거짓말 같았다. 나는 이 숲을 나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 

편지를 하나 보냈다. 

죄송해요, 잘하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