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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스가르드 공작 가문에 대한 전시회를 주최하면서 우리는 아스가르드 공작 가문의 유명인사 몇몇을 소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중 첫 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셀레스타인 제국 21대 황제 알폰의 즉위 기간 중 신성기사단의 단장직 및 황제의 보좌역을 맡았던 포르네 베투스 아스가르드입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로 기사단장 직무를 수행하였고, 잠깐의 공백기 이후로는 황제를 보좌하여 한 시대의 기록을 도맡아 한 사람으로….

 

 … 해서, 포르네 베투스 아스가르드에 대한 업적은 이와 같습니다. 다만, 포르네 베투스 아스가르드는 한 가지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편지를 쓰는 점이었습니다. 포르네 베투스 아스가르드는 수취인을 지정하지 않은 편지를 아주 다양하게, 오랫동안 적어왔고 이를 본인 소유의 별장 다락방에 숨겨두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편지들의 내용은 이번 전시회의 테마가 될 예정이며, 우리들은 그 편지에 대한 해석을 동봉하고자…

 

 … 편지들을 읽어보던 우리가 가장 특이하다 생각한 것은 가장 마지막에 적힌 편지에 대한 것입니다. 수취인을 절대 적지 않아온 여태까지의 수 백 장의 편지들 중 유일하게 수취인이 적혀 있는 것으로, 어째서 보내지 못했는가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보내지 않았다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포르네 베투스 아스가르드의 마지막 편지이며, 받는 이의 이름은….

 

 

 

 


 

 

좋은 아침이야.

 

나는 몇 년째 이 편지의 끝을 맺지 못해서 모든 종이를 찢어버렸어. 오늘 아침은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해. 햇빛은 따사롭고, 나는 침대에 누워 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지. 지긋지긋한 서류의 산에서 벗어나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아. 언제나 무거웠던 머리가 오늘은 조금 상쾌해서, 오늘에야말로 편지를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사실 자신은 없지만 노력할게. 어제보다 한 글자를 더 쓸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면서, 나는 오늘도 네게 편지를 쓰고자 하고 있어. 보내지는 못하겠지만.

 

인생을 종이로 치환한다면 나는 몇 장 짜리 기록이 될까. 아마 내 이름 아래로 수많은 업적이 쌓일 거야. 나는 그걸 바라고 달려왔거든. 나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내 인생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미래로 뻗어갈 나의 업적을 가장 중요시 여겼어. 그리고 나는 그 시절을 이제야 후회할 수 있게 됐고.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받기 위해 그렇게 내달렸으면서, 사랑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지금도 잘 이해하지 못해. 사랑은 너무 어려운 거야. 하지만 나는 사랑을 이제 아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건 숭고할 정도로 아름다운 일이야. 누군가의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는 건 조금도 미련한 행위가 아니었던 거야. 나는 그렇게 숨을 들이키고 내뱉으면서 겨우 완성한 문장들을 자꾸만 삼켜. 이해와 실천은 다르니까. 사랑은 아직 너무 어려우니까.

 

내가 왜 사랑받고 싶어 했는지. 내가 왜 사랑을 하고 싶어 했는지. 이제 와서 원인을 따지는 건 너무 바보 같은 행동이기 때문에 별 말은 얹지 않을게. 하지만, 있잖아. 나는 그래도 너무 행복했어. 살아있으면서, 내가, 나 같은 게, 이러한 행복을 느껴도 될까 걱정이 들 정도로, 이대로 죽는다면 나의 일생은 찬란하지 않을지언정 나의 마음엔 볕이 들겠구나 싶을 정도로. 어떨 때는 웃음이 났고, 어떨 때에는 울음이 났어. 그 모든 추억 가운데에는 네가 있었지. 노엘, 내 시작이자 유일이 될 마지막 존재. 나는 너에게 전하고 싶었어. 열렬한 사랑을 담아서, 네게 전하지 못한 모든 말을 담아서. 내가 이 편지를 다 완성하지 못해도, 내가 네게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네가 알아주길 바랄 뿐이야.

 

그런 어른스러운 각오에, 어린아이처럼 하나 투정을 부리자면, 내 역사에는 네가 적혀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이 편지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특별한 편지가 되길 바라. 타인에게 분명히 보내는 편지 중 네 것이 유일이 되길 바라고, 마지막이 되길 원하고 있어. 그렇게 만들 거야. 그리하여 내 역사에 네 이름이 한 줄이라도 들어간다면 나는 그 역사를 오리고 떼어내 내 첫 장에 새겨 넣을 거야. 나의 역사의 동반자가 되어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아. 나 같은 것과 함께 걷는다는 건 네게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되니까. 어쩔 수 없어. 그거 아니. 사랑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사랑해야만 하는데, 나는 언제나 스스로를 사랑하질 못했어. 그러니까 함께 걸어주진 마. 그냥 네 이름을 잠깐, 아주 잠시만 빌려줘. 그리하여 내 인생에 네 이름의 전부를 새겨 넣으면. 그때에. 다시 한번 더 함께 돌아가자고 말해주었으면 좋겠어. 그 말은 꼭 내가, 사랑받는 것 같아서.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오늘의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같아 울어버릴 것 같거든.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음은 내게 있어 천운이겠지. 사랑받는다는 감각을 알게 해 주어 네게 언제나 고마울 뿐이야. 사람이, 현재를 살아감에 있어,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고, 소중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지 알려주어 고마워. 그냥 그래.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사해서 네 생각을 하는 내가 더 이상 밉지가 않았어. 내게도 공평하게 다정했던 반역자를 위해 인생을 허비하는 건 결코 멍청한 일만이 아니라서. 

 

나. 답장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해. 

하지만 이 편지는 보내지 않을 거야. 과거에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편지는 공평한 네게, 너무 특별한 것일 테니까.

마지막 순간에 나를 떠올려달라는 부탁도 덧붙이지 않을게. 너의 이름을 내 역사에 적으려면, 기록자인 내가 끝없이 너를 곱씹는 게 옳으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 과거의 기억을 소중히 안는 건 내가 하도록 할게. 그냥 평소처럼 지내주길. 행복하길. 사랑받으면서, 내일을 맞이하길. 안녕, 편지지를 꺼낸 건 아침이었는데 벌써 새벽빛에 하늘이 새까매졌네.

 

좋은 꿈 꿔. 

 

 

미래의 네게 닿길 바라며, 노엘 폰 랑베르에게.

너의 푸른 항성, 포르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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